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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러시아, 우크라 침공 한 달 만에 병력 20% 잃었다. 푸틴 특별대표, 사직 러시아 떠나. 무라토프, 노벨상 팔아 우크라 돕겠다

by 수예이슈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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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벗어난 장기전이 됐다. 
 
‘세계 2위 군사대국’을 앞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역을 기습 침공했다. ‘설마’ 했던 침공이었지만, 압도적 군사력으로 사흘 내 수도 키이우까지 점령한 뒤 친러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데 속전속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개전 한 달이 되도록 러시아군이 수중에 넣은 주요 도시는 단 한 곳(헤르손)뿐. 손실은 불어났다. 러시아군에선 1만 명 가까운 전사자가 발생했다. 구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간 잃은 병력(1만5,000명)과 맞먹는다. 부상자도 2만 명에 달한다. 투입 병력 20% 안팎을 잃은 셈이다. 
 
서방은 역사상 최강 제재로 러시아를 옥죄고 있다. 군 전략 실패와 나라 경제 파탄 위기에 악에 받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희생을 키우는 비극으로 전세를 이끌고 있다.러시아군이 키이우까지 진격하는 데는 고작 9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 전력을 앞세운 러시아군은 침공 첫날 키이우와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 외곽까지 밀고 들어왔다.
 
항구 도시 오데사와 마리우폴에도 공습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 군 시설을 폭격했고,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공항을 집중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북 3면에서 동시다발적 공격이 전개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의 운명은 끝을 앞두고 있다고 짐작됐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은 막강한 복병이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무혈입성할 것으로 예상한 러시아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침공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군이 움직이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며 “우리는 준비돼 있고, 강하고,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군과 국민을 대동단결시킨 점도 결사항전 의지를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침공 첫날부터 러시아 공습 헬기와 항공기를 잇따라 격추시키며 자국 영공을 지켜냈다.
 
전투기 보유 대수가 우크라이나보다 10배나 많은 러시아군은 현재까지도 공중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저스틴 브롱크 연구원은 “초기에 제공권을 장악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군 시설을 정밀 타격하지 못한 ‘러시아 공군 실종’이야말로 러시아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평가했다.

거센 반격에 역사상 최강이라 자평했던 러시아 기갑부대 등 지상군은 우왕좌왕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매복과 정밀 타격 전술에 러시아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평야와 하천이 많은 우크라이나의 자연 지형도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는 보루였다. 진흙으로 변한 평원에서 러시아 탱크는 허우적거렸고, 공병 지원 부족으로 수많은 하천에 가로막혔다. 키이우 코앞까지 들어온 장장 64㎞의 러시아군 호송대 행렬은 침공 나흘 만에 멈춰 섰다. 연료와 탄약 등 군수 물자가 떨어진 탓이다. 프랭크 맥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가 사흘 안에 항복할 것으로 예상해 병참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진단했다. ‘사흘 내 우크라이나 점령’이라는 러시아의 오만이 부른 실패였다.

작전 지휘도 엉망이었다. 통신 장비 고장으로 지휘관과 일선 병사들이 암호화한 통신망이 아닌 휴대전화로 전술을 주고 받았다. 감청으로 입수한 첩보를 토대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장성들을 저격했다. 전장에 파견된 러시아 장성 20명 중 6명이 이렇게 쓰러졌다. 지휘 체계가 무너지고 식량과 피복 부족 등으로 사기가 꺾인 병사들은 전선을 이탈했다.
 
러시아는 군대와 함께 경제도 휘청거렸다. 비축해 놓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서방의 경제 제재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생각보다 굳건하지 않았다. 서방의 전방위 제재에 교역이 멈추고, 돈줄은 막혔다.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다. 세계 곳곳에서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의 자산은 동결되거나 압류됐다. 스포츠, 예술계에서도 러시아는 퇴출 대상에 올랐다.

러시아군의 전략 실패와 파탄 직전의 경제 상황은 역설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변주됐다. 푸틴 대통령은 무고한 목숨을 대가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겠다는 최악의 전술로 전환했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과 하르키우 등 주요 거점 도시에서 노약자 수백~수천 명이 대피한 주민 대피소나 병원 등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유엔이 집계한 민간인 사망자는 22일까지 953명, 부상자는 1,557명인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경 밖으로 떠밀려 간 피란민도 356만 명이 넘는다.

향후 전세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우크라이나군이 근 한 달 만에 러시아군에 빼앗긴 키이우 외곽 지역 통제권을 탈환하는 등 역전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보급 문제를 해결하고 용병 등 추가 병력을 투입할 경우 또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잭 워틀링 연구원이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가 초기 실패를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한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군사력을 회복할 기간을 2~3주 정도로 추산한다. 그 안에 평화협상이 타결돼야 전쟁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악의 경우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뒤엎으려는 시도 중 하나”라며 “우크라이나를 정복하지 않더라도 교착상태를 지속하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국제 정세를 재편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도전하는 ‘신냉전’의 서막이 올랐다는 얘기다.
 

한편, ‘전쟁 범죄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제 측근이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한 항의 표시를 사직하고 러시아를 떠났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시장경제화 개혁을 이끈 설계자로 평가받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 특별대표가 사직하고 러시아를 떠났고, 다시 올라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타스통신 등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추바이스 대표의 사직을 확인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로이터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푸틴 대통령의 특별대표로 국제기구와의 협력 역할을 맡았던 추바이스 대표의 사직은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러시아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항의라고 평가했다.

추바이스 대표는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전환을 설계했던 예고르 가이다르 러시아 초대 총리 사단의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명으로 혼란스러운 포스트 소련 시대의 가장 저명한 러시아인 중 한명이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추바이스 대표는 2009년 가이다르 전 총리의 별세 이후 한 시대가 지났다고 썼다고 로이터는 밝혔다.

그는 “가이다르가 전략적 위험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한 것 같다”며 “나는 틀렸다”고 말했다.

추바이스 대표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 국영 전력회사 ‘라오(RAO) UES’,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러시아나노기술공사(RUSNANO·루스나노)를 이끌었고, 루스나노 대표 사직 며칠 후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 달성’을 담당하는 대(對)국제기구 관계 대통령 특별대표직을 맡아왔다.

추바이스 대표는 1990년대 러시아 경제 민영화 계획의 설계자이자 실행자로 1990년대 중·후반 보리스 옐친 대통령 정부에서 경제 부총리·비서실장을 지냈다.

반대자들은 그가 1990년대 민영화 과정에서 초강대국 소련의 자산을 소수의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에게 매각한 크렘린궁의 꼭두각시 리더(master)라고 비판하고, 지지자들은 러시아에 시장을 구축하기 싸웠던 영웅이고, 내전을 막았다고 평가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하지만 소련 이후 러시아가 문제가 생겼을 때 의지한 것은 추바이스 대표로 옐친 당시 대통령은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 지불 유예)을 선언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서명을 지시했다.

추바이스 대표는 옐친 대통령이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권력을 잡기 시작한 푸틴이 제안한 크렘린궁에서의 직책을 거부했다고 푸틴이 1999년 일련의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로이터는 밝혔다.

한편,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도우려고 자신이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은 러시아 언론인이 화제다.
2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반체제 인사로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60)는 지난해 수상한 노벨 평화상 메달을 경매에 친다고 밝혔다.

무라토프는 텔레그램에 "이 노벨상을 경매에 올릴 수 있는지 경매 업체에 문의 중"이라며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죄없는 피란민, 다치고 아픈 어린이와 메달을 나누고 싶다"고 적었다.


1993년 노바야 가제타를 공동 설립하고 1995년부터 지금까지 편집장을 맡아 푸틴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해 온 무라토프는 독재에 맞선 경력을 인정 받아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설립한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쟁 참사를 계속 보도 하고 있다.

푸틴 정권이 '가짜 뉴스' 유포자에게 최고 징역 15년형을 선고하겠다는 경고를 날려도 무라토프 편집장은 주 3회 발행을 고수하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 전했다.

무라토프는 WP에 "비통하고 부끄럽다"면서 "우리나라의 무기가 이웃 나라를 파괴한 이상 우리는 그 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슬퍼했다.

한편 러시아군은 지난 21일 오전에도 우크라이나의 남서부 항구도시 오데사의 외곽 주거지역을 공격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오데사 시의회 관계자는 "공격 받은 건물에 불이 났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오데사 외곽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겐나디 트루하노프 오데사 시장은 "공격받은 민간인 거주 건물은 평화로운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라고 말했다.
흑해에 인접한 오데사는 인구 100만 규모의 항구도시로 수도 키이우,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다.

우크라이나의 해운 수출입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가 러시아에 넘어가게 되면 우크라이나로서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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