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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측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채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인 러시아가 단기간 내 우크라이나를 무력화하고 전쟁을 끝내리라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전장에는 파괴되거나 버려진 러시아군 장비가 널려 있다. 현대전의 기본인 제공권조차 장악하지 못했다. 전차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을 패배시켰던 소련군의 후예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러시아는 전면전을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인 러시아가 단기간 내 우크라이나를 무력화하고 전쟁을 끝내리라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전장에는 파괴되거나 버려진 러시아군 장비가 널려 있다. 현대전의 기본인 제공권조차 장악하지 못했다. 전차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을 패배시켰던 소련군의 후예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러시아는 전쟁 목표가 불분명했다. 영토 확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영향력 확대 저지, 미국과의 대결 구도 변화 등 러시아의 안보 이익 중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술은 거창했고 자신감은 넘쳐났다. 정치권 등에서는 한 번의 공습만으로도 우크라이나군과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무시됐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남하하면, 공수부대가 수도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 비행장을 점령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무너뜨리는 전격전을 계획했다. 전차와 기계화보병으로 구성된 대대전술단(BTG)과 특수전부대, 압도적인 공군력과 미사일 전력을 투입하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비행장 점령에 실패하고, 키이우로 남하하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받아 진격이 저지되면서 전격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부터는 ‘수렁’이었다. 전차병들이 진흙탕에 빠진 전차를 버리고 떠나거나, 연료 부족으로 방치된 장비를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트랙터로 가져가는 영상이 틱톡에 잇따라 올라왔다. 병사들은 상점을 약탈하고, 길을 잃은 채 방황하다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러시아의 실전 경험은 체첸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및 돈바스, 시리아다. 면적이 작고 대도시도 많지 않으며, 테러 조직이나 반군이 상대였던 곳이다. 일각에서 러시아의 군사혁신 사례로 제시했고, 전쟁 전에 주목받았던 대대전술단도 이같은 지역 분쟁 개입을 염두에 뒀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넓은 60만㎢에 달하는 영토에 도시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만큼 타격해야 할 표적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밀유도무기 재고는 이를 모두 타격할 수 없었다. 지르콘 극초음속미사일은 실전투입이 불가능했고, 킨잘 극초음속미사일은 수십발만 생산됐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kh-101도 각각 수백발만 있었다. 개전 이래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1000발을 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키이우 외에 하르키우, 체르니히우, 수미, 헤르손 등의 도시가 곳곳에 있는데도 러시아군의 지상작전은 농업지대 위주로 짜여졌다. 많은 병력이 필요한 시가전 대비는 미흡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쟁 준비를 충실히 했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도움을 받아 양성한 정규군과 특수전부대는 수만명에 달했다. 대전차미사일과 저격총 등을 국산화하는 등 방위산업 기반도 닦았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준비한 예비군도 사기가 높았다.
이같은 현실에서 러시아군이 자랑하던 대대전술단은 한계를 드러냈다. 미군은 전쟁 전 대대전술단에 대해 “정보·지휘통제·정비·의무·보급 관련 조직이 취약해 작전지속 능력이 부족하다. 공격 시 적지 깊숙이 진출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0개 중대를 중령급 지휘관이 효과적으로 통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체첸과 시리아에선 러시아군에 우호적인 현지 무장조직의 지원을 받았지만, 우크라이나처럼 적대적 환경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연료와 식량 보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통신도 연결되지 않아 일선 부대에 파견된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민간 통신장비를 쓰는 정황도 포착됐다. 징집병과 계약직 지원병 간 전투의지나 숙련도 차이도 컸다.
공군 조종사의 숙련도도 낮았다. 공중에서 핵심시설을 정밀타격해야 지상군 작전이 쉬워지는데, 우크라이나군 지휘통제 및 방공망과 전투기는 지금도 작동한다. 공중 정밀타격이 실패한 셈이다.
정보전에서도 러시아군은 밀렸다. 우크라이나군은 텔레그램 챗봇을 통해 러시아군의 이동에 대한 제보를 수집했다. 이를 통해 키이우로 진격하던 러시아군 대열을 격파했다. 도로 표지판도 모두 제거했다.
표지판이 사라진 도로에서 러시아군은 오래 전에 만든 지도에 의존해야 했다. 진흙뻘 등의 영향으로 샛길이나 비포장도로 사용은 많지 않았고, 대도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를 이용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미사일 매복 공격은 간선도로에 집중됐고, 후방에서 오는 유조차 등 보급대열이 공격받자 진격 속도도 현저히 감소했다. 이는 러시아군이 주요 도시에 묶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전쟁 목표가 불분명했다. 영토 확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영향력 확대 저지, 미국과의 대결 구도 변화 등 러시아의 안보 이익 중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술은 거창했고 자신감은 넘쳐났다. 정치권 등에서는 한 번의 공습만으로도 우크라이나군과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무시됐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남하하면, 공수부대가 수도 키이우 인근 호스토멜 비행장을 점령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무너뜨리는 전격전을 계획했다. 전차와 기계화보병으로 구성된 대대전술단(BTG)과 특수전부대, 압도적인 공군력과 미사일 전력을 투입하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비행장 점령에 실패하고, 키이우로 남하하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받아 진격이 저지되면서 전격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부터는 ‘수렁’이었다. 전차병들이 진흙탕에 빠진 전차를 버리고 떠나거나, 연료 부족으로 방치된 장비를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트랙터로 가져가는 영상이 틱톡에 잇따라 올라왔다. 병사들은 상점을 약탈하고, 길을 잃은 채 방황하다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러시아의 실전 경험은 체첸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및 돈바스, 시리아다. 면적이 작고 대도시도 많지 않으며, 테러 조직이나 반군이 상대였던 곳이다. 일각에서 러시아의 군사혁신 사례로 제시했고, 전쟁 전에 주목받았던 대대전술단도 이같은 지역 분쟁 개입을 염두에 뒀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넓은 60만㎢에 달하는 영토에 도시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만큼 타격해야 할 표적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밀유도무기 재고는 이를 모두 타격할 수 없었다. 지르콘 극초음속미사일은 실전투입이 불가능했고, 킨잘 극초음속미사일은 수십발만 생산됐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kh-101도 각각 수백발만 있었다. 개전 이래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1000발을 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키이우 외에 하르키우, 체르니히우, 수미, 헤르손 등의 도시가 곳곳에 있는데도 러시아군의 지상작전은 농업지대 위주로 짜여졌다. 많은 병력이 필요한 시가전 대비는 미흡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쟁 준비를 충실히 했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도움을 받아 양성한 정규군과 특수전부대는 수만명에 달했다. 대전차미사일과 저격총 등을 국산화하는 등 방위산업 기반도 닦았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준비한 예비군도 사기가 높았다.
이같은 현실에서 러시아군이 자랑하던 대대전술단은 한계를 드러냈다. 미군은 전쟁 전 대대전술단에 대해 “정보·지휘통제·정비·의무·보급 관련 조직이 취약해 작전지속 능력이 부족하다. 공격 시 적지 깊숙이 진출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0개 중대를 중령급 지휘관이 효과적으로 통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체첸과 시리아에선 러시아군에 우호적인 현지 무장조직의 지원을 받았지만, 우크라이나처럼 적대적 환경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연료와 식량 보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통신도 연결되지 않아 일선 부대에 파견된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민간 통신장비를 쓰는 정황도 포착됐다. 징집병과 계약직 지원병 간 전투의지나 숙련도 차이도 컸다.
공군 조종사의 숙련도도 낮았다. 공중에서 핵심시설을 정밀타격해야 지상군 작전이 쉬워지는데, 우크라이나군 지휘통제 및 방공망과 전투기는 지금도 작동한다. 공중 정밀타격이 실패한 셈이다.
정보전에서도 러시아군은 밀렸다. 우크라이나군은 텔레그램 챗봇을 통해 러시아군의 이동에 대한 제보를 수집했다. 이를 통해 키이우로 진격하던 러시아군 대열을 격파했다. 도로 표지판도 모두 제거했다.
표지판이 사라진 도로에서 러시아군은 오래 전에 만든 지도에 의존해야 했다. 진흙뻘 등의 영향으로 샛길이나 비포장도로 사용은 많지 않았고, 대도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를 이용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미사일 매복 공격은 간선도로에 집중됐고, 후방에서 오는 유조차 등 보급대열이 공격받자 진격 속도도 현저히 감소했다. 이는 러시아군이 주요 도시에 묶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차별 폭격과 산업시설 파괴로 돌아서나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러시아는 새로운 전술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주요 도시를 대대적으로 포격하면서 시가전을 벌이는 것이다. 체첸과 시리아에서 썼던 전술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당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알레포 등 반군 도시들을 포위하고 포격해 철저히 파괴했다.
이를 위해서는 숙련된 보병과 값싸고 강한 대포가 많이 필요하다. 1945년 베를린 공방전에서 소련군은 병력 250만명, 야포 4만1600문, 전투차량 6250대로 베를린을 포위 공격했다.
보병 증원은 재블린 등 우크라이나의 대전차미사일 위협으로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는 극동과 시베리아, 아르메니아 등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민간군사기업 소속 용병과 시리아, 체첸 전투원 등도 모으는 중이다.
전격전에 실패하고, 키이우 포위도 쉽지 않은데다 다른 주요 도시도 함락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용병을 앞세워 인적 손실을 막고, 구식 대포와 다연장로켓으로 끊임없이 포격을 감행해 민간인들을 공포에 빠뜨려 정치적 타협을 강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의 의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일반적으로 시가전은 방어하는 측에 훨씬 유리하다. 장기간에 걸쳐 물자와 인력을 보충해주고, 적의 포격으로부터 병력과 무기를 숨기기도 쉽다. 포위 공격을 감행해도 함락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실제로 43만명이 살고 있는 마리우폴은 2주 넘게 포위된 채 집중 포격을 받아 25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리우폴은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직후 주요 도시에서 식량 등 물자를 비축하고 바리케이드를 만들었으며, 병력과 무기를 보충하는 등 시가전 준비를 진행해왔다.
시리아 내전 당시 정부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함락까지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리아 반군보다 훨씬 정예화된 우크라이나 정부군,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에 분노한 민병대와 시민들을 상대로 러시아군이 시가전에 뛰어든다면, 시리아 내전보다 훨씬 길고 참혹한 시가전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러시아군 지휘관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무기와 식량 등의 군수물자 지원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용병을 동원해도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싸우기 위한 훈련과 장비 지급 등이 필요하다.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이 추가적인 점령 작전 대신 주요 도시를 초토화하고, 남부 지역에 ‘인민공화국’을 세워 러시아화하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당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알레포 등 반군 도시들을 포위하고 포격해 철저히 파괴했다.
이를 위해서는 숙련된 보병과 값싸고 강한 대포가 많이 필요하다. 1945년 베를린 공방전에서 소련군은 병력 250만명, 야포 4만1600문, 전투차량 6250대로 베를린을 포위 공격했다.
보병 증원은 재블린 등 우크라이나의 대전차미사일 위협으로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는 극동과 시베리아, 아르메니아 등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민간군사기업 소속 용병과 시리아, 체첸 전투원 등도 모으는 중이다.
전격전에 실패하고, 키이우 포위도 쉽지 않은데다 다른 주요 도시도 함락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용병을 앞세워 인적 손실을 막고, 구식 대포와 다연장로켓으로 끊임없이 포격을 감행해 민간인들을 공포에 빠뜨려 정치적 타협을 강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의 의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일반적으로 시가전은 방어하는 측에 훨씬 유리하다. 장기간에 걸쳐 물자와 인력을 보충해주고, 적의 포격으로부터 병력과 무기를 숨기기도 쉽다. 포위 공격을 감행해도 함락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실제로 43만명이 살고 있는 마리우폴은 2주 넘게 포위된 채 집중 포격을 받아 25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리우폴은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직후 주요 도시에서 식량 등 물자를 비축하고 바리케이드를 만들었으며, 병력과 무기를 보충하는 등 시가전 준비를 진행해왔다.
시리아 내전 당시 정부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함락까지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리아 반군보다 훨씬 정예화된 우크라이나 정부군,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에 분노한 민병대와 시민들을 상대로 러시아군이 시가전에 뛰어든다면, 시리아 내전보다 훨씬 길고 참혹한 시가전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러시아군 지휘관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무기와 식량 등의 군수물자 지원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용병을 동원해도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싸우기 위한 훈련과 장비 지급 등이 필요하다.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이 추가적인 점령 작전 대신 주요 도시를 초토화하고, 남부 지역에 ‘인민공화국’을 세워 러시아화하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범'(전쟁 범죄자)이다. 명분없는 무리한 전쟁을 본인의 '러시아 제국' 망상 때문에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거 희생시키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군은 어린이, 임산부 등 1200여명의 시민이 대피해있던 마리우폴의 극장을 폭격했다. 극장에는 하늘에서 볼 수 있게끔 '어린이들(дети)'이란 흰색 글자가 크게 표시돼 있는데도 폭격이 이뤄졌다. 산부인과와 아동병원 등도 공격 대상이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가 푸틴 대통령을 '전범'이라 부르기 시작한 이유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전범 행위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찐터뷰'는 우크라이나 현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군의 만행을 들을 수 있었다. 강도, 강간, 약탈, 민간인 살해 등이 만연한 현실을 꼭 알려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실제 헤르손 지역에서만 11건에 달하는 러시아군의 성폭행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키이우에서 지금은 서부 리브네로 몸을 피한 크라우트소우(35세)는 키이우 인근 러시아군의 점령지에 있던 자신의 친구에게 들은 경험담을 워딩 그대로 생생하게 '찐터뷰'에 보내줬다. 그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집 지하실에 몇 주 동안 머물렀다. 러시아인들은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다니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총을 쐈다. 사람들의 시신은 거리에 놓여 있었다. 아무도 시체들을 치우지 않았다."
"우리는 탈출하는 것을 주저했다. 인도주의적 통로가 없는 한 러시아인들이 차를 향해 총을 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부부가 아이와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러시아인들의 총을 맞고 모두 목숨을 잃은 사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과 추위 속에서 기다렸다."
"어느 날 무장한 러시아인 13명이 우리 집에 침입했다. 아버지의 소지품과 전화기가 압수됐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기를 만들어 차에 걸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총을 맞은 민간인들의 자동차들이 있었다. 차에 시체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시체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점령군들의 지역을 지나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살아있는 채로 지옥을 빠져나온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드린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런 러시아군의 행위가 전략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 땅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일종의 '충격과 공포'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테러를 매일같이 일으켜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겁을 줘 항복하고 굴복하게 만드는 게 푸틴 대통령의 구상인 셈이다.
이런 러시아군의 태도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고 있다. '지옥'에서 탈출한 친구의 고생담을 전해준 크라우트소우는 "우크라이나에는 현재 국가적으로든 지역적으로든 어떤 수준에서든 러시아 점령자들과 손을 잡으려는 정치적 세력이 없다"라며 "심지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의 회사원인 킬코(32세)는 "점령군들은 매우 자주 잔혹행위와 약탈을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러 성향이었던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러시아가 이득을 주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게 됐다"라며 "러시아 점령자들의 이데올로기와 행태를 보면 그들은 '나치'다. 점령군을 따르느니 차라리 굶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민간인 폭격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 삼아 앞세웠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했다는 궤변도 늘어놓는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에도 폭격을 가해 사람들을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이같은 거짓말을 프로파간다로 활용해왔다고 지적한다. 1930년대 소련의 수탈로 300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죽은 '대기근' 때에도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기근은 없다"고 선전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크림반도 합병은 없다"고 했고, "돈바스에는 러시아군이 없다"고 했으며,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었다. 이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키이우의 시민이었다가 지금은 피난을 간 율리아(24세)는 "푸틴이 말하는 모든 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전쟁 첫 날부터 러시아인들이 민간 인프라를 폭격했다"라며 "이건 완전한 '악' 그 자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믿을 수 없는 전쟁 범죄로 매일 죽어나가고 있다"고 분개했다.
르비우의 20대 대학생 크리스티나는 "민간인 폭격은 없다고? 듣는 게 지친다. 모두 뻔뻔한 거짓말"이라며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어떤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완전히 미쳤다. 그들의 행동은 우크라이나인들과 전 세계에 의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르비우의 대학생 미하일로(21세)는 "푸틴이 민간인 살상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논평할 가치가 없다. 사진 증거가 있다. 병원, 산부인과, 주거 지역, 민간 공항, 건축 기념물에 러시아 군대가 폭격을 했다"라며 "우크라이나 점령은 푸틴의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되고 있다. 푸틴은 자멸의 길로 걷고 있다"고 말했다.
'찐터뷰'는 우크라이나 현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군의 만행을 들을 수 있었다. 강도, 강간, 약탈, 민간인 살해 등이 만연한 현실을 꼭 알려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실제 헤르손 지역에서만 11건에 달하는 러시아군의 성폭행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키이우에서 지금은 서부 리브네로 몸을 피한 크라우트소우(35세)는 키이우 인근 러시아군의 점령지에 있던 자신의 친구에게 들은 경험담을 워딩 그대로 생생하게 '찐터뷰'에 보내줬다. 그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집 지하실에 몇 주 동안 머물렀다. 러시아인들은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다니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총을 쐈다. 사람들의 시신은 거리에 놓여 있었다. 아무도 시체들을 치우지 않았다."
"우리는 탈출하는 것을 주저했다. 인도주의적 통로가 없는 한 러시아인들이 차를 향해 총을 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부부가 아이와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러시아인들의 총을 맞고 모두 목숨을 잃은 사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과 추위 속에서 기다렸다."
"어느 날 무장한 러시아인 13명이 우리 집에 침입했다. 아버지의 소지품과 전화기가 압수됐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기를 만들어 차에 걸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총을 맞은 민간인들의 자동차들이 있었다. 차에 시체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시체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점령군들의 지역을 지나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살아있는 채로 지옥을 빠져나온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드린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런 러시아군의 행위가 전략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 땅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일종의 '충격과 공포'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테러를 매일같이 일으켜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겁을 줘 항복하고 굴복하게 만드는 게 푸틴 대통령의 구상인 셈이다.
이런 러시아군의 태도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고 있다. '지옥'에서 탈출한 친구의 고생담을 전해준 크라우트소우는 "우크라이나에는 현재 국가적으로든 지역적으로든 어떤 수준에서든 러시아 점령자들과 손을 잡으려는 정치적 세력이 없다"라며 "심지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의 회사원인 킬코(32세)는 "점령군들은 매우 자주 잔혹행위와 약탈을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러 성향이었던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러시아가 이득을 주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게 됐다"라며 "러시아 점령자들의 이데올로기와 행태를 보면 그들은 '나치'다. 점령군을 따르느니 차라리 굶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민간인 폭격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 삼아 앞세웠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했다는 궤변도 늘어놓는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에도 폭격을 가해 사람들을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이같은 거짓말을 프로파간다로 활용해왔다고 지적한다. 1930년대 소련의 수탈로 300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죽은 '대기근' 때에도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기근은 없다"고 선전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크림반도 합병은 없다"고 했고, "돈바스에는 러시아군이 없다"고 했으며,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었다. 이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키이우의 시민이었다가 지금은 피난을 간 율리아(24세)는 "푸틴이 말하는 모든 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전쟁 첫 날부터 러시아인들이 민간 인프라를 폭격했다"라며 "이건 완전한 '악' 그 자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믿을 수 없는 전쟁 범죄로 매일 죽어나가고 있다"고 분개했다.
르비우의 20대 대학생 크리스티나는 "민간인 폭격은 없다고? 듣는 게 지친다. 모두 뻔뻔한 거짓말"이라며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어떤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완전히 미쳤다. 그들의 행동은 우크라이나인들과 전 세계에 의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르비우의 대학생 미하일로(21세)는 "푸틴이 민간인 살상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논평할 가치가 없다. 사진 증거가 있다. 병원, 산부인과, 주거 지역, 민간 공항, 건축 기념물에 러시아 군대가 폭격을 했다"라며 "우크라이나 점령은 푸틴의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되고 있다. 푸틴은 자멸의 길로 걷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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