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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성공학

인생성공학 "하나님을 보는 방법,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by 수예이슈 202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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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가치있게 살려면 내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라

 

인생을 가치있게 살려면 "네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라." 이렇게 하나님이 교훈을 하셨어요.

한번 들어가면 절대 다시 살아나올 수없는 감옥에 한 죄수가 들어가게됐어요.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죽어야 나갈수있었습니다. 그러다 방법을 하나 생각했습니다.

죄수가 죽는 경우가 생기면 바깥에서 유일하게 장의사 한사람이 들어와 시체에 염을 하고, 그날 하루는 시체보관소에 잘 안치해두었다가 그 다음날 묘지에 장사를 지내게 돼요. 그것을 이 죄수가 보게 된거에요.

그 장의사를 만났습니다.

 

"다음번에 죄수가 죽거들랑 그 시체를 안치할 곳의 열쇠를 내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그날밤 아무도 가지않는 그 곳에 가서 관을 열고 그 시체와 같이 누워있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관을 가지고 나가서 공동묘지에 장사하고 흙을 덮고 감시자들이 사라지면 몇시간뒤에 와서 흙을 다 제하고 꺼내주시오."

 

기가 막힌 계획이었죠. 누가 죽기만을 간절히 기다린거에요. 죽어라 죽어라.

어느날, 죄수 중 한사람이 죽었다는 싸인이 울립니다. 이게 뭐냐면 종을 치는 거에요. "애도합시다." 그게 해줄 수 있는 예후의 전부였습니다.

 

'드디어 내가 나가는 날이구나!' 하고 기다렸죠.

밤에 아무도 접근하지않는 시체 안치소에 몰래 들어가서 관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누군지도 모를 고마운 사람위에 탁 누워서, 아침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살아나갈 수 있는데, 시체가 문제가 아니죠.

 

그 다음날, 관이 들리는 느낌이 들어요. 드디어 문을 열고 나가는 거에요. 쾌재를 불러요. 흙이 덮여요.

 

'나가는구나.' 생각을 한거죠.

 

'기다리자. 참자.' 그러다보니 지루하잖아요.

 

'나를 이렇게 나가게 해준 고마운 분이 누구냐?' 하고 준비해 간 성냥을 켜서 불을 불이고 얼굴을 본거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자기랑 약속했던 장의사였던거에요. 자기를 건져줘야 될 그 사람이 여기 누워있는거에요.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이런 모습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자기 지혜, 자기 명철, 자기 경험을 굉장히 자랑합니다.

 

'나같이 똑같은 사람이 어디있어. 다 이렇게 살아야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미련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기가 죽을때가 되어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자기지식,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라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의뢰하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믿고 맡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방법?

 

"믿고 맡기고 싶은데, 보여야 믿죠? 하나님 안 보이는데 안 들리는데 안 만져지는게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맞습니다. 맞죠. 보여야 믿죠.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안 보인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혹시 내가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는 방법이 있다고 지난 시간 얘기를 했죠?

 

아무리 달을 쳐다봐도 분화구가 안 보입니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보니깐 분화구가 보여요. 손등을 유심히 뚫어지게 쳐다봐도 미생물이 안보여요. 현미경으로 보니깐 보이더라고요.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보는 방법을 내가 모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안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법을 몰라서 못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죠. 그래서, 오늘도 그 보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인지 그 약속을 하고 오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사람 솔로몬이 있죠. 솔로몬은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며 그 인생 말년에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조언을 하죠.

"사람들아 내가 부귀영화를 다 누려봤는데 헛되더라.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렇게 인생을 살아라." 라고 이야기 한것이 전도서 12장 1절말씀 "너는 청년의 때에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우리는 진리라고 말하죠.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모스 선지자는 이런 얘기를 해요. 아무리 먹고 마시고 즐기고 누려도 이 인생의 채워지지 않는 삶의 공허함이 있다는 거에요. 그 곤고한 인생의 원인이 무엇일까?

 

그래서 그는 해법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못한 영적 기갈이라."

 

인생의 타는 목마름이 있는 거에요.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내 인생의 곤고함의 원인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영적기갈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 인생문제의 모든 해법을 이 두 가지로 요약하죠.

 

"창조자를 알아라.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들어보라."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의 지식과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뢰해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창조자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는거에요.

그리고,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으로 오늘 이 시간은 우리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되는지 거기에 대한 목마름을 한번 풀어보고자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내인생!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그냥 막 열심히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들은 유치원때부터 바빠요. 왜 바빠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바빠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바쁘게 살아야요. 요즘 세상 바쁘지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백수도 바빠요. 그런데, 어디로 가야될지? 무엇을 해야될지 모른 채 그냥 바쁘게 달리기만 하니, 그 끝이 허무할 수밖에 없겠죠.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우리 인생의 목적과 우리 인생의 방향은 어디있는가. 목적은 만든 자가 제일 잘 압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물들은 다 목적이 있어요. 목적이 없는 존재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물의 가치는 그 목적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목적대로 사용될 때, 가치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로부터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세가지 삶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 인생에는 세가지 삶이 있다.

 

첫째는 모태라고 하죠. 어머니의 뱃 속. 어머니를 태로 삼고 사는 태 중에 열 달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첫번째삶입니다. 이 첫번째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지태 지구촌을 태로 삼고사는 우리 육으로 사는 백년인생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이 백년인생이 어머니 뱃속 10달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남자냐? 여자냐?가 좌우되고, 지적인 사람이냐? 감성적인 사람이냐? 체력이 좋으냐? 몸이 약하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느냐? 건강하게 태어나느냐? 이 모든 것이 모태속의 열달에 의해서, 인생 백년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태속의 10달의 삶이 끝이 아니라, 그 삶이 끝나고 나면 더 다른 삶이 있고, 더 차원높은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차원높은 삶은 이 모태의 열달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모태의 열달의 삶은 거기에만 집중하고 거기에만 만족하고 누리고만 사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고, 고생되더라도 백년의 인생을 놓고, 준비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먹고 싶어도 안먹고, 욕을 하고 싶어도 안하고, 미워하지않고 참는거에요. 힘들어도. 고생되도. 왜냐면 백년의 인생을 준비해야 되는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이킬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백년인생 지구촌의 태를 삼고사는 백년인생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인생 그 다음 생애 영원한 세계가 있다. 영원한 삶이 있다. 이것이 인간들에게 허용된 세가지 삶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촌 백년을 사는 동안에 그 영원한 인생을 대비해서 준비하고 만들며 살아야한다. 고생되고 힘들어도 거기에 희망과 소망을 두고 이 시간에 만드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인생이 그저 힘들고 어렵기만 한것이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고 만드는 삶이 너무 재밌고, 신나고 그것을 통해서 영원한 기쁨의 세계가 영원히 우리에게 보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육신의 삶은 한번 죽는 것이 하나님의 정한 이치"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죽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영원한 삶이 있다.

예수님께서 인생의 죽음은 타작마당과 같다.

 

타작마당이 뭐냐면 8개월동안 농사를 짓고나면 마지막 타작을 합니다. 타작은 껍대기와알곡을 분리하는 작업이에요. 분리해서 껍대기는 불에 던진다는 거에요. 태워버려요. 그리고, 알곡은 곳간에 집어넣는거죠.

우리의 육신의 삶이 누구든지 간에 육신의 삶이 끝나고 나면, 몸은 불에 태워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몸안에 있는 알맹이 영이 영원한 세계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원한 세계가서 사는 그 존재가 무엇이냐면 영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고, 이 지구촌 백년을 사는 그 몸을 우리는 육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은 두가지의 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겉사람이 있고, 속사람이 있다."

 

사람이 두개라는 거에요. 그 중 속사람은 영이고 겉사람은 육신입니다. 이 육신은 껍대기기때문에 불에 태워 없어지게 될겁니다. 육신을 쓰고 있는동안 껍대기가 있기때문에 알곡이 있는거에요. 껍대기가 없으면 알곡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껍대기가 너무 중요하지만, 껍대기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종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껍대기 쓰고 있는동안 알곡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영이 중요하고 핵심이고, 열매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큰 로켓, 우주선은 큰 동체가 목적지까지 다 가지 않습니다. 목적지에는 그 조그마한 탄도 하나, 작은 착륙선 하나만 가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왜 이 큰 몸체가 필요할까요? 가는 과정가운에 이 몸체가 추진력이 되기 때문이에요. 가다보면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갑니다. 하나가 또 툭 떨어져나가요. 마지막에는 조그마한 탄두가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거 보내려고 그 많은 세계가 있는 거에요.

우리의 삶도 어머니 뱃속의 열달은 백년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이 백년의 인생은 영원한 삶을 위해서 존재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정확하게 알아야됩니다.

나무가 잎이 나죠? 잎이 목적이 아닙니다. 잎이 집니다. 꽃이 펴요. 나무는 꽃이 목적이 아닙니다. 꽃이 집니다. 열매가 맺어요. 열매가 목적입니다. 꽃이 지면 열매가 그때부터 새롭게 목적의 삶이 펼쳐지는 거에요.

 

그래서, 겉사람 육신은 껍대기에 해당되고, 우리 영은 알맹이에 해당됩니다.

또, 우리가 선물을 사면 귀한 선물은 좋은 포장지에 포장을 합니다. 포장지가 우리의 육이고, 그 알맹이 선물은 우리의 영인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은 영혼의 집과 같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영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실 사람과 동물이 구분이 됩니다. 우리 사람은 동물과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그래서 항상 뒤에 동물이 붙어요. 그런데, 그냥 동물이라고 하면 기분나쁘니까, 사회적 동물. 직립 보행하는 동물.

 

언어적 동물이라고 하는 데 , 개미도 언어가 있어요.

그리고, 코끼리도 직립보행 할 수 있어요. 연습하면 잘해요. 그런데, 왜 네발로 기냐? 그냥 자기가 네발로 기는 게 좋기때문에 네 발로 기는 거에요. 직립보행이 뭐 대단하게 아니에요. 그래서, 직립보행하는 동물, 언어적 동물, 사회적동물 구분이 안돼요.

그런데, 만드신 하나님께 물어보니까, 인간에게 영이 있다. 그래서, 영원한 삶이 있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영이 없어서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차이라는 것에요.

요즘은 로봇시대입니다. 아톰. 로봇들 많죠? 잘 생겼어요. 힘도 쎄요. 공부도 잘해요. 달리기도 잘해요. 싸움도 잘해요. 이길수가 없어요. 그런데 감정이 없잖아. 눈물도 흘려요. 화도내요. 웃기기도 잘해요. 그런데, 밧데리 빼면 끝이에요. 그냥 기계덩어리에요.

 

로봇에게는 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잘 만들어도 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평한 삶을 꿈꾸죠? 정의란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를 하죠. 하나님의 정의는 행한대로 갚아주는 삶이에요. 행한대로 갚아준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나타내요. 세상의 어떤 논리도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행한대로 갚아주는 것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셔서 이것을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겠죠. 선한 자가 악한 자에게 사기 당하고, 선한 자가 악한 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런데, 악한자는 버젓히 잘 삽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있다면 이럴리가 없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없는거야"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가봤습니까?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삶은 종착지가 아니에요. 영계에서 영원한 삶이 목적지요. 열매요. 그래서 영원한 세계까지 끝까지 가보면 정말 행한대로 갚아주는 공의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처음에 교회가니깐,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하더라고요.

 

'하나님이 왜 아버지지? 단군도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에 가깝지 않냐? 왜 아버지라고 할까?'

 

자기를 낳아준 자를 아버지라고 해요. 낳아주지 않았는데 아버지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어떤 꼬마가 옆집아저씨보고 아빠 아빠 하면 큰일납니다.

아버지는 나를 낳아준 존재입니다. 다시 바꿔서 얘기하면, 내가 성장하면 아버지처럼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인간에게도 영이 있고, 그 영이 마지막 목적지이기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는거에요.

 

바꿔서 얘기하면, 내가 하나님과 같은 차원, 하나님과 같은 멋진 세상을 살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생각의 한계는 육신만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어야 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인간의 가치는 영에 있고, 누구든지 영원한 영의 삶이 다 주어져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삶의 의미 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살아야된다는 것입니다.

선행학습 많이 하죠? 유치원때부터 해요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생 15년을 선행 학습을 해요. 무엇때문에? 좋은대학 가려고. 그럼 왜 좋은대학갈까? 좋은 대학가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좋은대학 가면 잘먹고,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은 대학간다고 행복해집니까? 좋은대학간다고, 잘 먹고, 잘 산다는 보장 있습니까? 아닌데 다만 좀 더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냐는 거에요. 내가 좀 더 행복하게 살수있는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지지 않겠냐? 이 확률을 조금더 높이고 싶어서 15년을 투자 하는 거에요.

 

엄마가 울면서 아이를 밤 10시 11시까지 학원을 보냅니다. 그래도 저렇게 하면 앞으로 몇십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어?라는 의미로 선행학습을 시켜요. 노후대비를 하죠.

요즘은 노후대비 안하면,

 

"지금 생각이 있습니까? 백세 시대에요. 정신차리고 사세요. 노후대비 하세요."

 

이렇게 얘기를 해요. 30년 노후대비해서 몇년을 더 잘 살려고? 한 20년? 30년?

우리 수명이 사실은 백세수명이라고 하지만, 건강나이는 70세가 채 안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많이 살아봤자 노후 조금 보장된 시간이 한 20년 이에요. 그런데, 노후 30년 준비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어떤사람은 30년 준비했는데, 노후도 누리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노후대비를 하라는 거에요.

그럼 노후대비하면 노후가 행복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노후대비를 하면 행복할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진다는 거에요. 그 확률을 조금 더 높이려고 15년을 선행학습하고, 30년을 먹을 것 입을 것 다 절약하면서 허리끈 졸라대면서 삽니다.

 

"젊었을 때 굶으면 괜찮아. 늙어선 굶으면 안 돼. 젊었을때 아파도 참으면 돼. 늙었을때 병원못가면 서러워." 준비하는 거에요.

그런데, 왜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할 생각을 못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가 없을까봐 준비를 안한다? 만약에 있으면 어떻게 할거냐? 그래서 그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를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 인생은 많은 곤고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곤고한거에요. 그런데, 그 곤고함은 다 원인이있습니다. 얼굴에 뽀두락지가 났어요. 연고 바른다고 낫는게 아니에요. 그 원인은 몸안에 있는 것이죠. 원인을 치료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얼음산이 바다위에 떠 다녀요. 어떻게 저 무거운 얼음산이 떠다니지? 그 보이지않는 바닷속에 어마어마한 얼음덩이 95% 얼음덩이가 밑에 바치고 있기에 5%가 보이죠.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죠.

이렇게 모든 것은 원인세계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곤고한 것은 그 원인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도 솔로몬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우리가 곤고한것은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고,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않은 영적기갈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않고 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보는 방법

 

서두에 하나님을 보는 방법을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얘기해주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봐야 하나님이 보입니다.

가시광선이 있어요. 광선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가시광선. 보이지 않는 광선도 있다는 거에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작은 소리는 귀에 잘 들리잖아요. 큰 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잘 들리겠죠?

 

그런데, 너무 큰소리는 우리 귀에 안들린다는 거에요. 우리 귀가 들을 수 있는 그 소리의 음역대가 너무 작아도 안되고. 너무 커도안되는 그정도 까지라는 거에요. 그런데, 더 큰소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리가 안 들려요. 소리가 안들린다고 소리가 없다 말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이와같이 우리가 육으로 하나님이 보이지않고,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때문에, 내 영으로 봐야 보인다는 것입니다.

 

망원경으로 봐야 분화구가 보이고, 현미경으로 봐야 미생물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가 영원한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 영원한 존재가서 사는 존재가 영이고, 영은 육신쓰고 사는 동안에 이영을 잘 성장시켜서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영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성장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깨어난다. 굳건해진다.라고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결론은 "너는 청년의 때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손길을 내미시며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민 손을 한번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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