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홍수심판
성경에 보면 베드로후서 3장 17절에 보면 "굳세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은 "예수를 안 믿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예수를 잘못 믿는 것이다." 이런 말도 있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너무너무 열심히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역설적인 이야기 같지만. 하나님을 믿었는데, 잘못 믿었다는 거죠. 그래서, 차라리 하나님을 안 믿었더라면, 예수님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너무너무 열심히 믿었고. 그런데 너무 잘못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는 그런 비극을 낳게 되죠.
이와 같이, 우리도 신앙생활 할 때 예수믿으면 천국 간다. 예수만 믿으면 된다 이렇게 하지만, 믿는 것이 아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될 수가 없고, 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렇게 하지만 모르고서는 사랑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성경을 정확하게 알아야 되겠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도 스스로 이제 자각하고 반성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 신앙인들이 정말 예수를 안 믿는 것보다도 잘못 믿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에, 우리가 믿더라도 잘 믿자! 제대로 못 믿을 것 같으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게 차라리 더 낫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거든요.
벌거벗은 임금님
그래서, 한 가지 이야기를 먼저 해 드리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그 이야기가 있죠.
옛날에, 어떤 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지어오라고 재단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재단사가 훌륭한 옷이라고 옷을 가져왔어요. 가져왔는데 그냥 맨손으로 온 거예요.
"옷이 어디 있냐?" 그러니까
"왕이여. 제가 가져온 최고의 옷을 드리겠습니다. 이 옷은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입니다." 라고 하니까 왕이 뜨끔한 거예요. 왜냐면 왕이 평소에 거짓말을 많이 하거든요.
'어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게 들통 나면 안 된다.'
그래서 "아 그렇구나. 역시 훌륭한 옷이구나!"
이렇게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 신하들도 이제 불렀어요.
"옷이 어떠냐? 이 옷은 거짓말쟁이한테는 보이지 않는 옷이다."
이렇게 하니까 신하들도
"너무 멋지고 훌륭한 옷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리고 나서 한 술 더 떠서,
"이 훌륭한 옷을 백성들에게도 보여주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니까, 왕이 이제 옷을 입어야 되죠.
옷이 없는데 옷이 보이는 척 하면서 옷을 입어야 되니까, 입던 옷을 벗어야 되겠죠. 옷을 홀라당 다 벗고, 옷을 막 입는 척합니다.
근데 왕은 분명히 알몸인데 신하들이 볼 때도 알몸인데, 왕도 자기가 좋은 옷을 입은 것처럼, 신하도 좋은 옷을 입은 왕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행세하고 거리를 나가요. 거리를 나가니까, 많은 백성들도 "와 왕이 진짜 훌륭한 옷을 입었다."
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 눈에 안 보이지만 안 보이면 거짓말쟁이인게 탄로나니까, 잘 보인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어떤 아이가 나타나서
"임금님 발가벗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자. 이 이야기를 정말 좀 더 확대해 보면, 이 아이가 만약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아이조차도 영악해가지고.
"너무 잘 보여요. 임금님 멋져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 끝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신하들은 그 이후에 그 옷의 아름다움을 서로 자기가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다고 서로, 막 칭찬을 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나라에서 훌륭하다는 학자들을 불러다가 그것에 대해서 연구하도록 지시도 할 겁니다.
그리고 그 학자들은 옷에 관한 모든 참고문을 다 작성해가지고, 그 옷의 천이 분명히 페르시아산 비단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학자는 그 이론을 연장시켜서 페르시아 비단과 비단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제조 과정 이런 것들을 막 연구할 거예요. 또, 다른 학자는 페르시아 비단과 중국 비단의 차이. 이런 것들을 막 연구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비단의 미래 이런 것들을 연구하죠.
다른 한쪽에서는 그 페르시아 비단이 비단의 수놓인 황금 문양의 특색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이렇게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백성들에게 막 전파하는 것을 사명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 모든 백성들도 신하들도 이 왕의 옷에 얽힌 이 모든 이론, 이 모든 역사를 다 아는 것이 마치 훌륭한 신하나 백성으로서 임무를 다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막 서로 다투고 학습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또 거기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하게 되면 막 손가락질을 하게 되겠죠. 그리고 무식하다 그러고 정말 웃지 못할 희극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서 이런 희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찬란한 페르시아 비단으로 만들었다는 그 왕의 옷은 아무리 눈을 닦고 봐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나는 보이지 않는데 이거 보여야 되는 거예요. 지금.
'보이는 것은 왕이 알몸 뿐인데, 비단 옷이라니? 큰일 났구나! 어떻게 하지.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런가 믿음이 생길 때까지 좀 기다리자. 근데, 지금 당장 나는 안 보인다 하면 나는 안 되니까 일단은 보이는 걸로 하자. 보이겠지 나도. 나중에.
다 보인다 하니까.나도 보이는 척이라도 하자.'
그래서 "저도 잘 보입니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보이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뭔가 한마디 더 거들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옷이 보이는데, 정말 임금님 체형에 딱 맞는 재단법이 특히나 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정도로 이야기를 좀 해놓을까? 그럼 내가 좀 무시당하지 않겠지? '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죠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그 이론 체계를 그 교리라는 이름 안에서,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진리나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막 믿어야 되겠는데, 여겨야 되겠는데 이거. 대명천지에 도저히 양심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이 지성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도대체 이걸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존재하려고 하니까. 왕따 되지 않아야 되니까. 그리고 자기 거짓말쟁이가 탄로나면 안 되니까. 그래서 그냥 믿는 척 하는 거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래서 '참자. 믿는 척하자. 있다고 치자 좋은 게 좋잖아.'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신앙이.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런 경우가 허다하게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배우면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그중에 하나 홍수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의 비밀
노아의 홍수심판 얘기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 아주 중요한 큰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죠.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그냥 들어간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이 짧은 성경책 속에, 하나님이 쓰신 유일한 이 성경책에, 하나님의 우주 창조의 모든 원리가 다 담겨져 있는데, 그 작은 책 속에 내용을 막 집어넣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한 사건을 중심으로 편집한것이 이 성경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편집하게 하신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원작자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 쓰여진 모든 목적이 하나님 믿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믿게 하기 위한 건 사건, 사건만을 중심으로 기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냥 이솝 우화처럼 어떤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이야기 또 역사 이야기하려고 넣은 것이 아니라, 다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노아의 홍수 심판 역시 우리 가운데 시사하는 중요한 비밀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의 내용
홍수심판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지금부터 약 4300년 전에 거의 노아 할아버지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 사람들이 많은 죄를 많이 지었나 봐요. 창세기 6장 7장 8장에 보면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에 모든 계획이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지면에서 사람들을 쓸어버리겠다. 모든 육축과 기는 것과 이 모든 것을 다 멸해버리겠다."
그런데, 근데 그러기 전에 방주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방주를 타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거예요. 그래서 방주를 타는 사람은 살아날 것이고. 그런데, 모든 짐승들을 갖다가 한 쌍씩만 다 방주에 태운다는 거죠.
그리고 나서, 40일동안 비가 내리고, 또 150일 동안 물이 차 있다가, 결국 방주를 제외한 모든것이 홍수심판이 다 끝나기까지 271일 동안 물에 잠겨 있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과정 가운데 기성신앙에서는 기독교 신앙에서는 문자 그대로 홍수가 전 세계에 걸쳐서 일어났다. 천하가 물에 덮였다. 방주를 탄 노아의 가족 8명과 선택된 동물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생명체들이 멸종됐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않으므로, 그 죄악으로 심판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왜 홍수심판을 하셨을까?
그러면은, 여기서 우리가 의문이 생기는 것이 하나님이 왜 홍수 심판을 했는가?
하나님이 세상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할 정도로 그들의 죄악이 관여하기 때문에 심판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그 시대 누가 죄를 지었느냐? 이스라엘 민족 그 지역 노아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 세계에 흩어졌던 다른 사람들. 전혀 전혀 그 주관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방주를 만들어라 소리도 들은 적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 고조선 시대 단군 할아버지가 노아 할아버지로부터
"너도 빨리 방주에 올라타라." 라는 이야기 들은 적도 없고.
"왜 심판하세요?"
"죄악의 관영해서 그래."
"누가요?"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는 아닌데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 명령을 들은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어긴 적도 없고. 그런데 왜 제가 심판을 받아야 돼요?" 그렇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또
"니가 잘못이 있으니까 무조건 매를 맞아야 돼!"
이것이 아니라
"잘못이 있으니까 너는 반성을 해야 돼."
"어떻게 반성할까요?"
"방주를 만들 테니까 너는 방주를 타."
"싫은데요."
"그래 싫어? 그럼 맞아야지."
이렇게 되는데, 방주를 타라 소리도 안 들었다는 거예요.
숙제하라는 소리도 듣지 않았는데, 숙제 안 했다고 나를 선생님이 매를 든다? 그것은 불의한 일이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데 이것이 말이 안 맞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
그래서 우리가 이 홍수 심판을 통해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가져보죠? 저도 처음에 신앙생활을 가질 때 물었던 질문입니다.
"심청이는 지옥 가나요? 심청이도 지옥 가야 되나요? 심청이는 예수님 몰랐는데?"
어떻게 답을 할까? 굉장히 궁금했었어요. 근데 답은 뭐였냐면 지옥 간대요.
"왜요?"
갑자기 막. 좀 동의가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심청이가 죄가 있겠냐 없겠냐?"
"죄가 있을 것 같아요."
죄가 하나도 없겠습니까? 심청이라도 죄가 있겠죠.
"죄가 있으면 천국 갈 수 있겠냐?"
그래요. 짧은 상식이지만 못 간다고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요.
"못 가겠죠."
그러니까 지옥 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목사 장로님들 중에 못된 목사, 못된 장로 얼마 많은데, 그 사람들 다 그럼 천국 갑니까?"
하니깐, 천국 간다는 거예요.
"왜요? 왜? 그들이 천국 가요?"
그러니까 "그들의 죄가 아무리 크고 크다 할지라도. 예수님 이름으로 다 회개하면 흰 눈 같이 희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의 죄는 억만개고, 심청이는 죄가 10개인데, 그 죄 10개를 회개하지 못해서, 죄10개가 그대로 남아서 지옥 가는 것이고. 그들은 죄가 억만개가 있는데, 예수님 이름으로 회개해서 억만개가 0으로 되기 때문에 천국 간다." 는 거예요. 그래서 할 말이 없죠.
'그런가?'
"근데, 잠시만요, 심청이가 만약에 백제시대 사람이라 쳐요. 1400년, 1500년 전의 사람인데 그 심청이한테 예수 믿으라 소리 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 믿으라 소리도 안 해놓고, 왜 예수 안 믿었냐 하고. 이 시대는 사람들한테 막 그냥 예수 믿기 싫다 해도 쫓아다니면서 쫓아다니면서 예수 믿으라고. 예수 믿라고. 예수 믿으라고. 겁까지 줘 가면서. 이렇게 해가면서 예수 믿으라 하고. 그 백제시대 심청이는 예수믿으라는 소리도 한 번 안해놓고, 너 예수 안 믿어? 지옥 가야 돼! 그러면 하나님이 무슨 공의의 하나님입니까?" 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네가 이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해야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거예요. 나는 감사한데.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는 열심히 무속 신앙을 한단 말이에요. 민간 신앙을 한단 말이에요. 점도 보러 다니고 굿도 하고. 그럼 우리 엄마는 지옥 가야 된다는 거야. 근데, 착하지 못한 나는, 그냥 이렇게 날라리 신앙이라도 교회 다니는 척만 하면 천국 간다?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과연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는 어떠한가?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관 이것이 들어가 있고, 두 번째는 과연 지구 전체가 물에 잠길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성경에 나오는 홍수심판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 하나는 이 성경에 나오는 홍수심판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거예요.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들을 다 나 들어보라고 하는 말씀이라는 거예요. 그냥 그들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 그러면 이게 읽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성경에 있는 모든 이야기는 진리라는 거예요. 진리의 특성이 뭐냐 하면 진리는 보편성이에요.
보편성의 뜻은 뭐냐 하면, 거기에 나오는 모든 것이, 이 시대에도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해당된다는 거예요.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 그게 진리라면 나도 흙으로 만들어야 되고 모든 인생을 흙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사람을 갈비대로 만들었다? 성경에 나와 있어요. 그것이 진리라면 나도 갈비대로 만들고 우리 모두도 갈비대로 만들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 하와만 갈비대로 만들었다? 또 그리고 아담만 흙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성경에 있는 모든 이야기 이야기들을 그 시대 그 한 사람한테만 딱 국한시킨다면 이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미 죽은 책이고, 우리가 읽을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왜 성경을 읽느냐 왜 구약을 읽어야 되냐?
구약은 아 재미있는 이야기네! 재미있는 이야기? 다른 이야기,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고. 드라마 보면 더 재미있어요.
왜 성경을 이렇게 보냐는 거예요. 삼국지 보듯이 어떤 이야기 교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진리라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고 내 이야기라는 거예요.
아담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아담이 나다. 그리고 가인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가인이 나다. 노아 이야기도 노아가 나다. 이렇게 해야, 이게 성경이 살아 있는 성경이고 내게도 적용되는 성경이지, 그들만의 그 어떤 한 순간만의 이야기고, 나하고 상관없는 이야기! 이렇게 하면, 이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진리의 특성이 바로 그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홍수 심판은 바로 내 이야기다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은 온세상을 대상으로 한 전체심판?
노아의 홍수심판은 온 세상을 대상으로 전체 심판을 했다.이것을 정통교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은 온 지구가 다 물에 잠겼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하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거예요.
창세기 6장 11절에 보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폐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해 있더라."
온 땅이다. 심판을 받았더라 이렇게 돼 있고요.
창세기 7장 4절에 보면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 그렇게 되어 있고
창세기 7장 19절에 보면 "물이 땅에 더욱 더 창일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다는 거예요.
창세기 7장 21절에 보면 "생물이 다 죽었고, 그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까지 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조차도 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물에 잠겼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베레스트 산이 8,848미터인데 그것도 물에 잠겼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지구촌 전체의 생명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와 같이 이 온 땅에다 물에 잠겼다고 생각하는 그 근거는 뭐냐면, 성경에 나와 있는 그 근거 때문에 그런 거죠.
"온 땅이 심판을 받았고, 모든 생물이 다 죽었고, 또 하늘에 나는 새까지, 물에 있는 어류까지 땅에 기는 모든 것까지 모든 사람들 천하에 높은 산도 물에 잠겼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주석을 보면 성경의 유명한 성경을 푸는 우리 성경 박사님들이 있죠. 우리 어릴 때 보면 전과라고 그러나요? 요즘은 참고서라고 해야 되나요? 참고서 보면 설명을 자세하게 다 해 놨어요. 성경 하나하나를 다 설명해 놓은 책을 주석이라고 그러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정통으로 보는 박윤선 박사의 주석에 보면 "창공에 물이 많이 있었다. 지구가 정돈이 안 된 당시에 지질학적 근거가 있다."
모든 동물들은 자력으로 끌어들였다는 거예요. 그리고 특수 냉동장치의 동면 상태에서 방주에 탔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는데 뭘 못하겠냐? 아마 이런 방식으로 했지 않았을까? 아니 이 방식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 무조건 믿는 거죠.
매튜 엘리의 주석을 보면 "비는 일시에 온 세상에 내렸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6일 동안 지으셨으나 그것을 멸하시는 데 40일 걸렸다." 이렇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국제성서주소에 보면 "창공에 있는 이 하늘의 바다는 아래로 난 격자창을 통해서 배수된다." 이렇게 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6절에 보면은 "하늘의 궁창을 만드셨다" 그랬어요.
이 궁창에서 물이 쏟아졌다. 땅에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에 창이 열렸다고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 많은 물이 어디서 왔느냐? 땅에서 깊음의 샘이 막 터졌다는 거예요. 하늘의 창이 열려서 물이 쏟아졌대요. 그것이 창세기에 창조하신 궁창이다. 물주머니다. 이렇게 또 이야기해요.
그래서 이와 같이 성경의 기본적인 어떤 절대적인 구조를 통해서, 홍수심판은 전체가 다 물에 잠겼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의문 1. 물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잠시 제가 하면 아주 쉬운 것부터 간단한 것부터 먼저 제기를 해보면, 물 문제가 있습니다.
이 지구 전체가 물에 잠기기까지는 현재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의 8배의 물이 필요하다 그래요. 이 8배 물이 과연 어디서 왔는가?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우주 유입설을 이야기합니다. 우주 유입설이 바로 창세기 7장 11절에 보면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래서, 창세기 1장에 이미 창조하실 때 하늘에 큰 물주머니를 창조해 놓으시고, 홍수 심판 때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해서 예비하셨다가 물 주머니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은 하늘에 창이 열려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서 지구에 8배에 더 많은 물들이 쏟아져서 지구가 물에 잠겼다 이렇게 한다면은 사실 우리가 이 대기권이라는 게 있잖아요. 대기권이 약 1000km 정도 돼요. 1000km 정도 그리고 구름은 한 13km 정도 올라가고 구름 자체도 없어요. 근데 이 천 킬로 되는 이 대기권을 뚫고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이 물방울이 무슨 로켓 엔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물방울이 아무리 쏟아져도 그대로 들어오는 순간 타서 증발해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물이 들어올 수 있겠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니까 하셨겠지? 그렇게 밀어붙이면 또 뭐.... 돼요
그러면 그 왔던 물들이 여덟배의 물이 어떻게 왔다 쳐요. 그 여덟 배 물이 어디로 다 빠져나갔냐는 거예요. 뭔가 밑에 하수구 구멍이 있어서 우주로 흘러갔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아니면 뭐 지구가 원래는 작았는데 물이 막 불어가지고 라면 불듯이 팅팅팅 커졌다 이렇게 해도 좋고. 아무튼 이 물 문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죠. 그 많은 물이 어디서 왔겠느냐? 그 많은 물이 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왔던 물이 또 그러면 어디로 빠져나갔느냐. 이것도 문제가 되죠.
의문 2.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생물을 끌어모았다?
그 다음에 생물을 끌어모으는 것도 문제입니다. 생물을 끌어모으는 것도 문제라는 거예요. 그때 당시에 4300년 전 고조선 시대 단군 할아버지 시대 때에 그 시골에 할아버지 노아할아버지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 많은 사람들한테 가서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고조선 시대, 단군 할아버지에게까지 와가지고
"방주를 타시오. 지금 하나님의 대대적인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니까. 이 지구 전체가 다 물에 잠길 것이니까 빨리 수 방주를 타시오." 이 말을 어떻게 하겠냐는 거예요
콜롬보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는 4천 년 가까이 지났을 때 이야기인데, 이미 그때 그러면 신대륙도 발견했을 것이고, 캥거루도 호주까지 가서 태웠을 것이고, 진도개도 진도까지 와서 태웠을 것이고, 아니면 그냥 진도개가 갑자기 어느 날 계시를 받고 막 달려가는 거예요. "어디 가냐?" 하니까.
"나 지금 방주 타러 가야 되니까 지금 가야 됩니다. 갈 길이 멉니다. 실크로드를 해서 저기까지 빨리 가야 된다."고 그렇게 갔겠느냐?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지 창조라는 영화가 있어요. 천지 창조라는 영화에 보면 어떻게 모은다고 되어 있냐면 노아가 길을 나서요. 길을 나서서 한참 뒤에 이제 저 산등성이 넘어서 노아가 오는데, 노아 뒤에 동물들이 둘씩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막 오고 있어요. 기린이 오고, 코끼리가 오고, 거기에 토끼가 따라오고 그다음에 새가 위에서 날아오고. 그렇게 하면서 따라서 따라서 따라서 방주에 다 타는 거예요.
그러면 호주에 있는 캥거루는 어떻게 왔겠냐는 거예요. 아메리카에 있는 얼룩말을 어떻게 왔겠으며, 진도개 진도개는 어떻게 왔겠냐는 거예요. 진도개는 어떻게 왔겠냐는 거예요. 그것도 성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문 3. 모든 생물들의 수용과 사육문제
그리고 세 번째는 모든 생물들의 수용과 사육 문제도 문제라는 거예요. 사실 이 배가 배 크기를 보면은 광이 50 규빗, 고가 30 규빗, 장이 300규빗이라고 그랬습니다.
규빗이라는 것은 성인 남자의 팔꿈치에서부터 손끝까지 대략 한 평균 45cm를 잡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보니까 지금 현재 톤으로 적재 중량을 하면 한 1만 5천 톤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크기라는 거예요. 그게 3층으로 만든 배인데, 이 세상에 동물이 약 100만 종이 된다는 거예요. 그중에 큰 동물만 1100종이 된다는 거예요. 수용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전지 전능하시니까 우리가 옷 보관할 때 그 이불 보관할 때 압축 보관하잖아요. 이불이 이렇게 퉁퉁했는데 압축 쫙 당기니까 자기 쫙 납작해지듯이 그렇게 압축 보관했나?
근데 이제 그 영화에 보면 이렇게 보면 이제 사육하는 문제도 문제잖아요. 이렇게 보는데 그 위에 이렇게 얼룩말이 있으면, 그 옆에 기린이 있고, 그 밑에 또 이제 조그마한 동물들이 여기 있고, 뱀은 그 밑에 있고, 막 이렇게 있어요. 펭균은 또 저쪽에 있고 그런데 사실은 얘네들 온도도 문제라는 거예요 펭귄은 막 더워 죽겠다 그러고. 그것 또 여기 이 놈은 추워 죽겠다고 그러고 요놈 맞춰라. 저 놈 맞춰. 맞출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 하시니까. 알약 하나 딱 먹여놓고. 알약 하나 먹여놓고. 그냥 그냥 뭐 홍수 심판 내내 동안 그냥 잠들게 했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사실은.
그렇게 아무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니깐, 무조건 된다 된다 된다 해도 밀어붙여도, 무조건 옷도 보이지 않는데 나는 보여 보여 하다 보면 옷이 보이는 것처럼 보여요 정말로. 정말 알몸뚱이 있는 임금님이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주장해. 근데 거기서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거죠. 못 믿을 게 믿는 게 믿음이니까. 믿을 거 믿고 못 믿을 거 못 믿는 게 그게 믿음이냐? 못 믿을 거 믿는 게 믿음이지!
그러니까 "주여! 믿습니다" 하고 막 고함을 질러요. 왜 그렇게 "믿습니다" 할까요? 안 믿기니까 "믿습니다" 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만 갈 것이 아니라 한번 생각을 해보자는 거예요. 이게 과연 가능할까?
의문4. 인구와 인종의 문제
그리고 인구와 인종의 문제도 문제입니다.
서기 원년 2천 년 전에, 지구 인구가 2억 5천만이라고 그렇게 추산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2400년을 더 올라가니까, 4300년 전에 지구촌에 딱 4쌍만 지금 남았다는 거예요. 다 죽었으니까.
노아와 그 아들 샘 함. 야벳의 부인 이렇게 네 쌍이 남았는데, 지금 75억 인구가 되려면 한 쌍당 계속해서 150명씩 애를 낳아야 된다는 거예요. 평균적으로 다 그렇게 낳아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보면 한 30명 낳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30명 낳는 사람은 "왜 그렇게 적게 낳냐?" 욕을 하겠죠. "미안해. 니가 그러면 250명 좀 낳아줘."
이렇게 어떻게 150명씩 낳아 재낄 수 있겠냐는 거예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지금 기네스북에 보면 44명이 최고 기록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비공식적으로는 69명까지 돼 있대요. 일단 공식적으로는 브라질에 44명이 최고 기록이라고 그러는데, 러시아에서 69명까지 나왔다는 그런 보고도 있답니다.
그것이 이 지구가 생긴 이래로, 수천억의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그중에 1등이 그 정도 낳았는데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다 150명 이상씩 낳아야 지금의 75억 인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말이 안 되죠.
인종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흑백 황인종도 어떻게 생겼을까?
주일학교 때, 여름 성경 때 갔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하나님 나라에 제빵사가 빵을 굽다가 그냥 좀 졸아서 빵을 태웠다는 거예요 큰일났다 하고 빨리 그냥 뒤집다가 빵이 떨어졌는데 그 떨어진 빵을 누가 지나가다가 "어. 빵이 떨어졌네" 하고 딱 먹다가 "니가 감히 하나님의 빵을 먹었냐? 이 빵처럼 검댕이가 되어라." 해서, 흑인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빵을 갖다가 아직 덜 익은 상태에서 잘 뒤집으려고 뒤집다가 땅에 떨어졌다는 거예요. 그걸 가서 주워서 먹었는데 "너는 흰둥이한테 가라." 그래서 흰둥이 됐다고.
잘 익었는데. 하나님께 드려야지. 갖고 가다가 떨어뜨렸는데 그걸 먹어서 황인이 되었다.
물론 이제 그냥 아이들한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흑백 황인종에 이렇게 생겨난 거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겠냐는 거예요. 4300년 전인데.
그리고 온 인류가 그러면 같은 조상이라는 거죠. 단군 할아버지도 그때 죽었어야 되고. 다 죽었으니까. 우리 조상도 노아 할아버지 모든 인류 민족의 조상이 노아 할아버지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의문 5. 지질학적인 문제
그리고, 지질학적인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만약에 그때 홍수가 있어가지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다면은 이 부분이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1977년도에 아기 맘모스 디마가 발견이 됐어요. 이게 왜 어떻게 발견되냐니까, 빙하 속에서 그대로 얼어 있었던 거죠. 그 어렸을 때 얘가 살았던 시절이 약 4만 년 전이라는 거예요. 4만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딱 드러나게 되었다는 거죠.
근데, 만약에 4300년 전에 온 지구가 다 물바다가 되었더라면 빙하가 다 녹았겠죠. 왜냐하면, 에베레스트 산도 물이 잠겼으니까. 다 녹았을 테니까. 결국 얘도 썩었지. 이렇게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냉동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거죠.
의문 6. 네피림 족속
그리고 또 하나. 홍수 심판의 전후를 보면 또 그런 내용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6장 4절에 네피림 족속이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4절은 그 분명히 홍수심판이 있기 전에 땅에 네피림 족속이 있었다고 분명히 설명을 하고 있죠.
그런데 홍수 심판이 지나고 나서, 한참 뒤에 민수기 13장 34절에 보면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이 살고 있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내피림 족속이 있었던 시절을 bc 약 2400년 그리고 민수기 13장 33절에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이 있었다는 그 시대가 bc 1400년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 심판을 기점으로 해서 1000년의 기간 동안에 그 자손이 그대로 번성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분명히 홍수 심판의 노아 방주를 탄 사람은 네 사람밖에 없고 그 부인들밖에 8명밖에 없는데 분명히 홍수 전에 있었던 사람이 홍수 이후에도 그대로 그 족속이 존재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내피림 족속은 홍수 심판으로 인해서 죽지 않았다는 거죠. 민족이 멸절 당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전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으니까. 홍수 심판 때 이 족속들은 전혀 죽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죠.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의문 7. 비둘기가 물고 온 나무잎사귀
그리고, 또 창세기 8장 11절에 보면, 홍수가 이제 다 멈췄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다니다가, 그 비둘기를 보내가지고 나무 잎사귀를 물고 오게 하죠. 근데 그 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어요. 나무 잎사귀가 있었다는 것은 274일 동안 물에 잠겨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거죠. 물에 잠긴 곳도 있었지만 물에 잠기지 않은 곳에서 나무 잎사귀를 물어왔다는 거예요. 만약에 전체가 물에 잠겼으면, 나무 잎사귀가 있을 게 어디 있어요? 이미 다 썩었죠. 그리고 수천년 수만년이 지났을 때 나무가 새로 생겨나든지 뭐 그렇게 했겠죠.
이와 같이 이런 것들은 사실 뭐 이렇게 막 이야기하면 밤새도록 해도 할 것이, 너무너무 많다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굳이 다 할 필요도 없죠. 이런 걸 통해서 이것은 전체적으로 지구 전체가 심판당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죠.
노아때 홍수심판에서 온 땅에 , 천하에 의미
그런데, 이와 같이 이렇게 뚜렷한 증거들이 너무나 많은데. 누가 초등학생 유치원생한테도 설명해도 받아들일만한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전체 심판이라고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을 할까? 하는것이죠.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결국 성경에 나와 있는 "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이렇게 되어 있고 "천하의 모든 생물들을 멸절하고" "천하에 높은 산도 물에 잠겼고" 하는 그 천하라는 개념 온 땅이라는 그 개념 때문에 철통같이 이렇게 믿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가 신학적으로 우리 모든 어떤 교리적인 체계가 뭐냐면 "성경은 오류가 없다." 성서 무오설!
성경은 오류가 없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글자 하나라도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무조건 믿어야 된다 조사 하나도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이단이다 라는 것이 굉장히 큰 강령으로 자리잡고 있고
그리고 축자 영감설 "각 글자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글자를 함부로 받아들여선 안 되고, 무조건 믿어야 된다." 이것이 신학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렇게 믿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 게 있습니다. 살펴보면 이런 내용이 있어요.
출애굽기1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온 땅에 가득했더라"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출애굽기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종살이야 할 때인데 그때 표현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이 중다하여서 온 땅에 가득하더라.
근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때 당시에 노예시대 때, 온 땅에 우리나라의 중국에 동남아에 유대인들이 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온 땅이라는 것은 그 애굽 주관권을 이야기하는 거죠.
누가복음 2장 1절에 보면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여서 예수님도 호적하러 그 부모가 호적하러 가다가, 베들레헴에서 낳게 되죠 .그러니까 천하의 호적하라 이랬는데, 우리나라는 로마 시대 때 우리나라를 호적한 적이 없어요. 중국 호적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천하라고 한 것은 그 로마 주관권이 천하였던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너무나 많이 나오고 있죠.
사도행전 2장 5절에 보면,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왔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출애굽기에 보면 이 출애굽기에서는 결국 "온 땅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득하더라." 그런데 온 땅이 아니고, 결국은 애굽 근처 이 애굽이라는 나라 주관권 전체 이 주변을 말하는 거죠.
또 하나는 앞서 말했듯이 누가복음 2장 1절에 보면 "천하의 호적하라"는 명에 따라서 예수님의 부모가 그 본적으로 내려가다가 예수님을 탄생하게 되는데, 천하의 호적한다고 해서 이게 온 세상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로마 중심의 중심의 문화권.
그 다음에 아까 사도행전 장에도 보면 여기 이야기하기를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왔대요. 천하 각국으로부터 유대인이 왔다고 그랬는데, 사실 유대인이 천하 각국에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이때는 이 사도행전 시대 로마 중심으로 그 주변의 나라가 천하 각국이었어요.
우리가 중국을 볼 때, 중국에서 천하 통일 그래요. 천하 통일한다고 해서 아메리카 유럽까지 통일한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중국 시대에는 자기 중국이 중국을 중심으로 이것이 세계 전체였던 거예요. 그래서 중화잖아요.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오랑캐들 이게 세 개였던 거예요. 이게 중국 중심의 세계 관은 중국과 동서남북이 오랑케 이게 세계 전체 다 였던 거예요. 이들에게는 로마고 서양이고 유럽이고 안 중에도 없는 거예요.
애굽시대는 애굽을 중심으로 이 주변의 방계세력들이 다 세계 온 땅이었고, 천하였던 거예요 로마 시대 때 로마를 중심으로 주변에 몇몇 흩어진 곳이 다 이것이 천하의 온 땅이었던 거예요. 결국은 천하 각국에서 왔다. 온 땅이다. 다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것은 그 주변에 정도밖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갖다가 문자 그대로.
"천하라고 했잖아. 온 땅이라고 했잖아. 천하라고 했는데 뭐 천하 각국에서 왔다고 했는데 믿어야지."
"아니 우리나라에 무슨 유대인이 있었어요? 유대인은 없었어요. 고구려 시대 때 유대인이 있었나요? 고주몽이 유대인인가요?"
"무조건 믿어야지. 성경에 나와 있잖아."
이렇게 해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결국 천하 각국이다. 온 땅이다 하는 것도 그 중심의 문화권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노아 시대 때 온 땅이 물에 잠겼다. 천하의 높은 산이 물에 잠겼다 하는 것은 결국은 결국 그 지역 정도만 이야기하는 거죠.
노아가 4300년 전에. 시골 할아버지 노아가 갈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됐겠냐는 거예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껏 해봤자 조금 밖에 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에요. 우리가 지평선. 수평선이 한 4km밖에 안 된대요. 우리가 볼 때 바닷끝이 굉장히 먼 것 같지만 4km밖에 안 된다는 거. 우리 시야가. 시평선이 8km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가 이런 구릉 지역이었는데. 혹시 평지라 할지라도. 평해라 할지라도 볼 수 있는 것이 8km 뒤로 8km 사방 8km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반경 8km 범위밖에 보이지 않는 거예요.
여기도 비가 내리고 저기도 비가 내리고. 배가 움직여도 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온 땅이다. 물에 잠겼다 천하의 높은 산이 물에 잠겼다 했을 때, 노아 할아버지가 4300년 전에 에베레스트 산을 알겠냐는 거예요. 알프스 산을 알겠냐는 거예요. 모르죠. 자기 지역에 있는 산이 최고인 줄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볼 때는 천하라는 개념은 바로 그 동네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 동네만 물에 잠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생각할 때 결국은 여기서 말하는 그냥 성경에 나와 있는 온 땅 천하 모든 생물 이것 때문에 온지구가 물에 잠겼다고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맞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도 마찬가지로 우리 천하갖고 유대인이 살았다고 이야기해야 되고. 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천하 각국에서 유대인들이 로마로 모이지 않았다는 거죠. 이스라엘로 모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다 틀린 이야기가 된다는 거. 전부 다 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형 법정주의
결국은 우리가 이 성경을 볼 때 문자 그대로 보는 그 신앙을 정말 타파해야 되겠다. 문자 그대로 봐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 굳세지 못한 자들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 그래서 성경을 억지로 풀면 안 되고 정확하게 알고 성경을 풀어야 된다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고 믿는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 심판은 부분 심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다 차치하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이것 때문에 부분 심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걸 다 무시하고서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 패턴을 보면, 계시록 11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성전 밖마당은 놔두고 성전 앞마당을 측량한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모스서 3장 7절에는 "하나님은 주 여호와께서 일을 하실 때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먼저 보이지 않고서는 절대 일을 행하지 않는다"고 했고, 또 로마서 5장 13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가 율법 이전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심판 패턴은 어떤 것이냐면은 먼저 죄가 있는 곳에 법을 주시고, 그 법을 어겼을 때 심판을 하신다는 거죠.
그 법은 이렇게 막 심판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법이라는 거예요. 내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다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게끔 법을 주신다는 거. 그러나 그것을 어겼을 때는 사하심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은 죄형 법정주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 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라 하는 법을 받지 않았을 때는 여기에 로마서 5장 13절처럼 죄가 율법 이전에도 세상에 있었다는 거예요. 죄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분명히 죄가 있었으나, 그러나, 율법이 가기 전까지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살인하면 죄다 라는 법이 없었을 때는 살인한다고 해서 처벌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살인을 하니까. 안 되겠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 살인하면 안 된다 살인하면 처벌하겠다는 법을 만들자. 그럼 그때부터 법이 적용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가 많아지면 법이 자꾸 많아지는 거죠.
근데, 그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있기 전에도 살인은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을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된다라는 법이 있기 전에도 예수를 안 믿는 자도 있었지만 그전에는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그 법을 받기 전에 예수 안 믿어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하나님 그것을 심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심판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은 전체심판이 아닌 부분심판
그래서 이와 같이 그렇기 때문에 이 홍수 심판은 전체 심판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절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 지역에서 한탄하면서 했던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그 지역 사람들의 이스라엘 민족의 그 죄악에 관영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 죄를 지은 자가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그 죄를 지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법을 주었어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너희들이 정말 다시 여기서 사하심을 받으려면 방주를 만들어라고.그
래서 방주를 만들려고 노아가 외치고 다녔는데, 노아가 조선 땅까지 와서 외친 것도 아니고, 중국 땅까지 와서 외친 것도 아니고, 저 아메리카 아프리카 가서 외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심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고래까지 뭐 다. 짐승들을 다 태울 수도 없다는 거예요. 태울 필요도 없고
"이 홍수 심판이 부분 심판이냐? 전체 심판이냐?그게 뭐 중요합니까? 그냥 전체심판이면 어떻고 부분 심판이면 어떻고. 그냥 믿으면 되지. 예수 믿고 천국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절대 천국 못 간다는 거예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분명히 벌거 벗었는데 옷을 입었다고. 그냥 믿는 척해주자. 믿는 척 해 주자. 좋은 게 좋으니까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지"니라고 그랬고, 하나님 예수님 말씀은 진리를 전함으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지, 그냥 믿는 척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홍수 심판은 바로 지역 심판이라 하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지금 사람이 이가 하나 아픈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발바닥까지 그렇게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픈 곳을 치료하는 지역치료라는 것입니다
치질이 걸렸는데 왜 입에다 소독약을 바를 필요가 뭐가 있겠냐는 거예요. 그 지역에 문제가 있으면 그 지역만 심판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 지역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사람들에게 복음의 법을 주었고 그 법이 방주를 타라 하는 법을 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 법이 있고 그 법에 의해서 심판이 좌우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우리가 정확하게 생각해 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홍수심판의 이유
홍수심판의 이유가 뭐냐?
1. 혼인문란
이유는 혼인문란 때문에 그러하다. 여기서 혼인문란을 어떻게 표현했냐면은
"하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대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게 그렇게 큰 죄인가? 하는데,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취하지 말고 하나님의 편으로 인도해 오고 이끌어와야 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히려 흑암에 주관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반해서 가서 그들을 섬기고 도모하고 따라간다는 거죠. 그건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찾아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아벨이 가인에게 찾아가서 사탄에게 경배를 하는 것과 같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은 "나를 섬겨주지 않아. 나를 섬겨주지 않으니까 너무 화가 나!" 그렇게 심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를 안 섬겨준다고 심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왜 그런데 도대체?" 그게 아니고 결국은 그렇게 해야지 우리 인생의 근본 창조목적 이루기때문에 그 길로 가라고 자꾸 심판하고 견책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혼인문란 때문에 그러하다
2. 선악분립
두 번째는 선악 분립을 하기 위해서 그랬다.왜냐하면 같이 섞여 있으면 다 썩어버린다는 거예요. 사과 상자에 썩은 사과가 하나 있으면, 나머지도 다 썩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분리를 해야 된다. 그래야 전체 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선악을 분립해야 된다는 거예요
3. 에덴복귀
그리고 또 하나는 에덴 복귀. 원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이 인류를 우주를 창조하시고 137억년만에 우주역사를 펼치시고 45억년에 지구역사를 펼치시고, 또 인간역사를 300만년 정도 펼치시다가, 지금부터 6천년전에 한 사람 아담을 택한 거잖아요.
이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그 목적을 이루려고 그 뜻을 이루려고 이 땅에 사역자로 하나님의 대신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메신저로 삼아서 역사를 펴려고 했는데.,아담이 성장하는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그 책임분담을 하지 못해서 그 자격을 따지 못했다는 거예요
실패했기때문에 다시 그 아들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역사를 다시 하려고 했는데 아벨이 가인이 서로 하나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는데. 서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아벨은 가인을 데리고 책임 분담을 못하고 역사가 깨지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역사를 시작하자.
그래서 아담에게 세 아들이 있었던 것처럼,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는 형태로 가는 거죠. 그래서 원래대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작하자. 이런 의미로 심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한 자들은 온전한 구원의 역사의 길을 갔겠죠.
하나님의 심판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패턴을 보면, 이 노아의 홍수심판이 부분심판이어야만 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패턴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 아니라, 창세기 6장 6절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하나님이 한탄하사"
그러니까 사람들이 잘못을 하니까, 그 잘못을 그대로 놔두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썩은 것을 그대로 냅두면 그대로 썩어서 다 문들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썩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갖다 도려내든지, 잘라내든지, 치유를 하든지 몸이 병이 들었으면 고쳐야 된다는 거예요. 놔두면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하나님이 노아 홍수 심판 때 심판하려고 예정돼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한탄할 정도로 내가 왜 사람을 창조했을까? 한탄할 정도로 속상한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을 못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게 되니까, 냅둘 수 없으니까 법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법을 주실 때에 그냥 하나님께서 법을 주시면,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항상 잘못이 생겼을 때는 회복의 길을 주시는데, 회복의 기회를 주실 때는 사람을 보내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법. 말씀을 전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 시간을 기간을 주시고, 그리고 그것을 행하느냐에 따라서 심판이 좌우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심판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심판도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패턴이 이와같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기때문에, 홍수심판은 기존의 믿음과는 다른 부분심판이다.
절대로 전체심판이어서는 안 되고, 전체심판일 수도 없고, 전체심판이어서도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홍수 심판에 대해서 왜 전체 심판을 이렇게 절대적으로 무조건 믿을까? 했을 때는 아까 성경을 볼 때에 정말 그 성경에 나와 있는 온 땅, 천하, 모든 생물, 또 천하에 높은 산 물에 잠겼다는 그 문자에 얽매어 있다는 거죠.
근데, 그 문자에 대한 것도 보면 성경에 말했듯이 아까 결국은 출애굽기 온 땅이 가득했다. 이게 온 땅이 온 세상이 아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결국은 누가복음에 천하에 호적을 했다고 하죠. 우리나라 호족한 것도 아니고, 단지 그 로마 주관권만 호적한 것이 아니냐? 그리고 사도행전에 유대인이 천하 각국에서 왔다 하지만 유대인이 천하 각국에 존재하지 않았었어요. 유대인이 천하각국 해봤자 로마 주변에 그 작은 이스라엘 주변에 흩어졌던 반경 100km도 안 되는 그 범주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전부 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명절을 맞이해서 유월절 명절을 맞이해서 자기 본향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을 천하 각국에서 유대인들이 다 왔다. 그렇게 했어요. 거기에 주변에 기껏 300mk 400km 떨어진 곳에 온 것도 아니에요. 바로 주변에 언저리에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걸 천하각국이라고 했던 거예요.
그러면 결국 이 통해서 볼 때 성경에 기록하는 관점을 볼 때, 결국은 사람이 쓴 것이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신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의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시대의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대 문화의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여호수아가 태양아 멈춰라 했을 때 그는 태양이 도는 걸로 생각했지. 천하의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그가 지구가 돈다는 걸 알았겠냐는 거예요. 다윗이 솔로몬이 지혜로운 솔로몬이 지구가 돈다는 걸 알았겠냐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의 사람이고 뭐고 상관이 없고 모른다는 거예요. 바울이 지구가 돈다는 걸 알았겠어요?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노아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천하가 물에 잠겼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고, 천하의 높은 산은 결국 그 지방에 높은 산이 얼마나 높겠어요? 사실은 그것이 잠긴 것이지 백두산이 잠긴 것도 아니고 에베레스산이 잠긴 것도 또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어떻게 그냥 무조건 홍수 심판이다. 전체 심판이다. 이렇게.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은 유대인처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행하게 된다는 거예요. 모르니까 그렇게 행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확하게 믿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패턴도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심청이는 절대 지옥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은 앞서 말했듯이 죄가 있는 곳에 법을 주시고 법을 주신 것을 지키느냐? 안 지키냐에 따라서 심판이 판정되는 것인데, 심청이한테는 예수 믿으라 소리를 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너 왜 예수 안 믿었어?"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도 불의한 하나님이 돼버린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 패턴이라는 거예요.
홍수심판의 핵심
1. 죄형법정주의
이 세상의 법도 죄형법정주의잖아요. 그래서 로마서 5장 13절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말 죄가 있었다 할지라도 율법이 있기 전에 죄는 죄로 여기지 않는다. 율법이 가면서부터 그 율법을 어길 때 죄가 된다는 거예요.
이 홍수심판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2. 문자신앙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는 이와 같이 문자 신앙으로 해서는 시대 상황을 보지 못함으로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절대로 문자 신앙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죠. 그것은 이미 태양을 멈춰라에서도 이야기를 했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한 패턴을 알 수 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또 그 말씀에 따라 그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주시고, 그 행한 여하에 따라서 결국 선악 분립을 한다. 그것은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노아 시대의 그 이야기는 그 노아의 이야기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했을 때, 다 나하고 상관이 있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끊임없이 하나님이 역사하고 일을 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해서 지금도 역사를 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행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럼 이와 같이,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법을 전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말씀을 전하고 계시다는 거죠. 그 말씀을 내가 믿고 받아들이고 행하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다 구원의 심판의 세계가 좌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방주를 탈 사람과 타지 않을 사람이 정해진 게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 노아가 돌아다닐 수 있는 범주에서는 돌아다니면서 "누구든지 방주를 타라. 방주를 타라. 방주를 타라." 다 방주를 타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방주를 타고 안 타고의 문제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어떤 누구에게만 특별하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그걸 믿고 안 믿고는 본인의 판단인 거죠.
그래서 이와 같이, 이 시대도 그와 같이 시대의 방주가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하나님의 방주가 항상 있다는 거. 시대에 하나님의 법이 항상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 법은 항상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법을 잘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임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보낸 자를 통해서 항상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지금도 이 시대에 또 우리가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그 방주를 우리가 타면서, 그 역사 가운데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냥 홍수심판에 대해서 "홍수심판이 전체 심판이다"라고 막 주장하는 학설도 많아요. 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주장하겠다 하는 학설도 있어요. 그리고 그냥 우리가 상식적으로 보면, 노아가 노아 홍수심판이 전체심판이 아니라는 것은 유치원생도 얼마든지 증거하고 변증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억지로 또 과학적으로 막 증거하려고 하는 세계도 있어요. 그런데 성경을 근거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죠. 성경을 근거로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되는데, 다른 것들은 우리가 신학도 항상 보면, 남이 한 이야기, 인간이 한 이야기를 막 외우는 게 신학 공부예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걸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책, 성경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성경에는 문제가 있으면 성경에 반드시 답이 있고, 그것은 사람의 논리와 변증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사람의 말이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안 듣고 판단하는 거에 따라서, 구원과 모든 것이 좌우되는 것이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거기에 또 반대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뭐 탄 거 먹어도 된다. 탄 거 먹으면 절대 안 된다. 탄 거 먹어도 괜찮다는 사람도 많아요. 사실은 탄 거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이 말 들으면 이 말을 맞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을 맞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학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신학이에요. 신이 없다는 것도 신학이고, 신이 있다는 것도 신학이고, 무신론도 신학이고, 유신론도 신학이고. 사람이 한 이야기만 잔뜩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성경을 통해서 성경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봐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2천 번 읽은 사람이 어떤 것을 깨달았고 어떤 것을 아는지 우리가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내가 성경을 2천 번 읽고, 정말 21년 동안 수도생활을 그냥 극적으로 하다 보니까 성경에 이런 것이 있더라고 성경에 이런 것이 있더라. 성경에 이런 것이 있더라." 들어보라는 거예요. 들어보고 판단은 내가 하면 되는 거죠.
왜냐하면 성경에 있어야 되고, 성경에 답이 있어야 되고 또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되고 이 두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는 거예요.
성경에 보니까 불심판한다고 구약에 많이 예언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불심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니가 불심판 안 하니까 불심판을 안 했으니까 너는 메시아가 아니다"라고 지금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게, 유대인이죠. 아직도 메시아가 안 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초림주를 기다리고 있죠. 그러니까 그들이 볼 때는 기독교인들은 다 또라이 바보 멍청인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는 생각할 때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맞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시 오신다 하니까 우리는 재림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똑같은 것은 뭐냐면. 예수님 불심판 안 했다는 거예요. 불심판 안 했으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불심판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독교인의 유대인이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구름 타고 오고, 불심판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불은 말씀이다. 이거더라는 거예요. 불은 말씀이라고. 성경에 수도 없이 불은 말씀이 나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불이 말씀이라는 것이 맞으려면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맞는다. 그렇게 끝나지 말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를 확인을 해봐야 된다는거에요. 현실이 그런지를 적용을 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 말이 바로 그거라는 거예요.실제가 없는 이론은 죽은 이론이라는 거예요
내가 일본까지 바다를 뛰어갈 수 있다. 이론은 나도 뛰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왜 뛰어갈 수 있느냐? 그 바다에 한 발 딱 내딛고, 한 발 빠질 사이에 한 발 다시 빨리 내딛으면 돼요. 또 이거 빠질 때 한 발 내딛으면 돼요. 하늘로 뛰어올라갈 수 있어요. 한 발짝 뒤고 발 떨어지잖아요. 떨어지기전에 빨리 한 발 더 올리고 한 발 더 올라가는 거예요. 이론은 맞아요.그럴 싸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느냐?
"한번 해봐."
"안 되네요."
"그러면 그거 죽은 이론이야. 썩은 이론이야." 이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 불이 말씀이다라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 한번 적용해 보자는 거예요. 적응해봤을 때. 맞으면 그게 맞는 풀이고, 틀리면 틀린 풀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 때를 한번 정확하게 보면 어떤가 보면, 예수님이 과연 불심판을 했느냐? 했을 때 예수님이 메시아고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사기꾼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 맞는데 그런데 불심판을 안 한 거예요.
그럼 예수님이 거짓말했거나 우리가 잘못 알았거나 두 개 중에 하나라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불은 말씀이더라는 거예요. 그럼 예수님 말씀 심판했느냐? 보니 진짜 예수님은 계속 말씀만 전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불이 말씀이라는 것도 맞네. 확인이 되는 거죠. 사실은 그 모든 성경의 원리가 다 그렇다는 거예요.
억지로 믿는 게 믿음이고. 못 믿을게 믿는 믿음.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거에요. 죽은 믿음을 아무리 해봤자 그것은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는 거죠.
분명히 내가 옷이 안 보이는데 나는 옷이 있다고 믿어요 믿어요 믿어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했는데 그건 아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를 안 믿었으면 안 믿었지 잘못 믿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잘못 믿는 것은 오히려 안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예수 믿으니까 천국 가겠지. 이렇게 한다는 거에요. 유대인들도 그런 거 아니에요. 유대인들은 하나님 너무너무 열심히 믿었으니까 다 천국 간다고 생각하겠죠. 그렇지만 과연 그들이 천국을 갈 수 있을까? 메시아를 죽였으데? 그럴 수가 없다는거죠.
그래서, 우리가 정말 심각한 것이 그냥 예수 믿었으니까 잘 되겠지. 아니 그냥 홍수심판이 전체심판이 어떻고. 부분 심판이 뭐 어때요. 그냥 예수 믿어 천국하는 똑같잖아요. 뭘 그렇게 알아야 됩니까? 라고 하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좌우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이게 그냥 무조건 그냥 못 믿을 거 믿는 게 믿음이다. 홍수 심판은 전체 심판이다. 그냥."
"어찌 그렇게 전체 심판일 수 있습니까? 보세요 네피림 후손이 그전에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다 죽었는데 어떻게 네피림 후손이 또 있어요?"
"아 그거 필요 없고 하나님이니까 다 할 수 있어. 필요 없다니까. 다 필요 없어. 부족한 할 수 있어 무조건 하나님과 할 수 있어."
이런 믿음은 정말 이 성경 하나님을 모독하는 믿음이고 이 성경의 권위를 확 떨어뜨리는 믿음이라는 거예요. 성경이 쓰잘때기없는 신화책이 되고 설화책이 되고 이야기 책이 돼버린다는 거. 성경은 절대 책이라는 거예요. 성경은 그렇게 수준 낮은 책이 아니고 그냥 이야기거리고.
그런데 저도 많은 예수쟁이와 이야기를 해보면 예수쟁이가 예수를 욕 먹게 하는구나!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뭐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아 그거 필요없고 그 성경을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냐? 성경은 원래 비과학적이고 초과학적이고 성경을 과학적 이성적으로 따지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무식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왜 그건 말이 안 되는 게, 과학이라는 것은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온 그 수많은 그 법칙들, 그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이 대단하잖아요. 옛날 어렸을 때 그렇게 생각했어. 천둥치면 하나님 방귀 뀌신다 그러고. 그냥 또 이렇게 뭐 비가 내리면 야 하나님 오줌누신다 그러고 그냥. 하나님이 물을 내리고. 물을 길어 올리고. 그렇게 생각 했어요.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우제를 지내잖아요. 기우제를 아프리카 사람들도 기우제 지낸다고, 그러고 서양 사람도 동양 사람도 기우제를 지내요. 왜? 하나님이 비를 내리고 안 내리고를 좌지우지하시기 때문에 빌어보자는 거예요. 하나님 지금 노하셔서.
"얘네들한테 물 주지 마. 맛 좀 봐야 돼."
"하나님 죄송합니다. 좀 용서해 주세요." 그러니까 마음이 풀어져가지고
"그래. 물 좀 뿌려줘. 야 저기 물 좀 뿌려줘. 야 여기 비 내려줘."
이렇게 하는 것처럼 아주 원시적인 하나님을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과학이 발달하고 보니까, 하나님은 굉장한 첨단 하나님인 거예요. 45억 년 전에 비 내리는 프로그램 하나 딱 만들어 놓으시고, 그냥 엔터 한 번 누르고 지금까지도 업데이트를 안 하시고 계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버전업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비 내리는 법칙 하나만 있나요? 수천만 가지 법칙이 있는 거예요.
사람이 죽고 사는 법칙. 바람이 부는 법칙. 생체의 법칙. 생태계의 법칙.
그 엄청난 그 비밀들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하나님이 진짜 놀랄 노자 대단하신 분이구나!
그래서 누가. "야 요즘 같이 달나라 왔다 갔다 왔다는 세상에 니가 하나님 믿냐?"
이렇게 막 주장하면 갑자기 기가 푹 죽어요.
"니가 무능하니까. 자신 없으니까. 능력 없으니까. 하나님 좀 덕 좀 보려고 하는 거 아니냐. 야 요즘 대명천지에 너 교회 다닌다면 부끄럽지 않냐?"
군대 갔을 때 86년도에도 그러더라고요.
"야 환자 집합!" 막 그러더라고요.
"환자 없는데요." 그러니까
"환자 진짜 없어. 병원 갈 놈 없어.?" 막 그러더라고요.
"교회 갈 놈이 있잖아!" 그러더라고요. 교회 갈놈들이 다 환자인 거예요. 정신병 환자인 거예요. 또라이로 보는 거예요. 사실은.
근데 실제로 정말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황당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기가 죽어요 자꾸. 환자라 그러고 하니까. 그냥 하나님 덕보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공부도 안 하고 그냥. 성적 잘 나오길 바라고 복받기 바라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더 선제 공격해야 되는 거죠. 지금 화성까지 지금 간다는 세상에 달나라 여행 간다는 세상에 아직도 하나님 못 믿겠느냐? 이게 우리의 주장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너무 없었어요. 심지어 바울 선생은 로마서 1장 20절에 2천 년 전에도. 2천 전에도 하나님이 어디 있냐? 할 때, 로마 그 바울 선생 당당하게 이야기한 거야. "니네들 만물을 봐. 만물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핑계치 못할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린 조카도
"야 하나님이 어디 있어?" 막 그래요
"야 하나님이 어디 있냐니. 이 지구 덩어리 있잖아. 이 땅들이 너무 크지? 이 땅덩어리가 1초에 30km가 1초에 30km를."
그러니까 하나 둘 셋 넷 하면 벌써 대전 가버린 거예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7 8 9 10 이렇게 하면 벌써 여기서 부산 가버린 거예요. 그렇게 지구가 빨리 달려요. 이 큰 덩어리가. 그런데 그 놈이 또 돌면서 달려요. 그런데 45년 동안 단 한 0.0001초의 오차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것을 저절로. 이게 돌아가겠냐? 이게? 이거 누가 돌리냐 누가? 어떤 돌리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냐? 이런 법칙을 만든 사람이 있을 거 아니냐? 기차가 저절로 다니겠냐? 레일을 누가 깔았으니까 달리겠지. 근데 이게 이게 한 가지만 있냐? 수천억 가지의 법칙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법칙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우리는 과학이라고 이름 짓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학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최첨단의 사도요 최첨단의 증거자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 과학을 갖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누구냐? 예수쟁이가 그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더 그 과학자들은 "더 하나님이 이런 것도 만들어셨네. 야 우리. 더 발견하면 또 있을 거야. 또 많을 거야. 엄청나게 있을 거야. 찾자 찾자 찾자 찾을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돌리면서 진짜 하나님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과학인데, 그 과학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학문처럼 생각하는 그런 또라이도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냥 계속 밀리는 거야. 떠밀리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진리책이고. 그 진리에 대해서 완벽하게. 진리라는 것은 아까 말했듯 보편 타당성 그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라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냥 예수님의 명함을 받고 첫 번째 거 낚시를 딱 하니까, 물고기가 동전을 물고 있더라. 그래서 그 동전으로 세금을 냈다. 그 이야기도 너무나 단순한 이야기를 갖다가 그걸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문자를 그대로 믿냐는 거에요. 하나님 전지 전능하신 거 다 알 수 있다.
전지전능 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어요. 그냥. "하나님 돈?" 하면 여기서 우르르 그냥 떨어지면 되죠. 그렇게 하면 되죠.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은 법칙을 통해서 전지전능함이지, 법칙을 무시한 전지전능함이 아니라는 거예요
일을 쉽게 하는 자가 자가 전문가고, 일을 쉽게 하는 자가 고수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법칙을 통해서 얼마든지 전지전능 할 수 있는데, 그 법칙을 초월해서 그냥 무법칙하게 질서의 하나님이신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믿을 때, 성경을 중심으로 진리대로 온전하게 믿어야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홍수 심판도 그냥 상식적으로 진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부분심판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그 심판 패턴은 절대 죄형 법정주의 하나님. 정말 죄가 있는 곳에 법을 주시고, 그 법을 따를 수 있는 기한을 주시고, 그 법을 갖다가 믿고 따른 여하에 따라서 심판을 판정하니까, 다 자기 책임이라고 또 할 말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거죠.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말해주고. 누군가에는 말하지 않고. 그건 공의가 아니죠.
그래서, 그 법을 들은 자는 죄가 있는 자고, 그 법을 들은 자만이 그 법에 대해서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법을 듣지 않는 사람은 단군 할아버지가 노아 방주 만들어라 소리도 듣지 않았고 타라 소리도 듣지 않았고. 또 그리고 그 하나님 보실 때, 그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의 관영함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성전 밖 마당이었다는 거예요.
성전 앞마당만 본 거예요. 그 앞마당을 보고 판단하시고 ,죄가 있으니까 고치라고 말씀을 주신 것이고.
근데 우리는 성전밖마당이었고. 조선은 성전 밖마당. 중국도 성전 밖마당이었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법을 받지도 않았고. 법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심판받을 이유도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전체 심판이라고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전체 심판 이유를 자꾸 성경의 문자 그대로 축자 영감설 때문에 성경은 무엇을 잡고 그렇지 않냐 한다면 이거는 어떻게 된 거냐? 이걸 또 반문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성경은 그와 같이 하나님이 쓰신 책이지만 사람을 통해서 썼고, 사람을 통해서 썼기 때문에 그 시대성을 고려해야 되고 그 사람의 그 민족의 그 차원의 한계를 고려해서 해석을 해야 된다. 풀이를 해야 된다.
"그럼 성경을 함부로 풀면 안 되는데. 실수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확인을 해보면 되지 않냐."
실제가 그런지 확인해 보면 우리가 절대 속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론만 들으면 우리 다 속을 수 있어요. 그래서, 속지 않는 방법은 그 이론이 그런지 확인해 보면 되는 거예요. 확인해 보고 되면 맞는 이론이고, 확인해 보고 안 되면 틀린 이론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성경에 그것이 있어야 되고. 너무나 간단하게 우리가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수고하고 애를 써서 제대로 믿어야 되는데, 그냥 수고하고 애쓰지 않고 그냥 그냥 믿는 척하자. 보이는 척하자. 보인다 치자. 이렇게 가다가는 다 헛짓을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이 새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래서 그 어린아이처럼 "임금님 발가벗었어요!" 하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고 그 길을 간다는 거예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늙은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이 새로운 것에 대해서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에 대해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그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젊은 사람이라는 거에요.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편다는 거예요.
그래서, 과연 우리가 이 인생길을 가면서 분명히 임금님은 벌거벗은 것인데, 다른 사람 다 훌륭한 옷이라고 할 때, 나도 덩달아서 나도 훌륭한 옷이라고 보이는 척하면서 서로 보이는 척척척척척 하다가 그 근본 원리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가는 그런 믿음의 인생이 너무 많다는 거죠. 그래서 정확하게 진리를 깨닫는 그런 성경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성경 2천 번이상 읽으신 정명석목사님께 배운 말씀입니다. 성경은 전설이나 신화도 아닌 하나님의 유일한 진리말씀인데 모르니 억지로 성경을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보편타당한 진리이며 성경의 문제는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이 채널을 통해 성경의 가치를 더 깨닫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지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와 이 시대에 우리 신앙인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올립니다.[CGM 공식 사이트] 연결 http://www.cgm.or.kr CGM 소통 공간 [만남과 대화]연결 http://www.god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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