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선악과 따 먹고 죽었다고 했는데, 왜 아담이 안 죽었을까? 그 이후로 아이도 셋이나 낳고? 심지어 930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하나님 선악과 따먹고 죽을 거라 했고 따먹었을때, 너 죽는다 했는데 왜 안 죽었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 했죠. 그리고 따 먹었을 때 너는 이제 죽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죽지도 않고 아들 셋이나 낳고 930살까지 살았다는 거예요. 왜 안 죽었을까? 하나님 말씀 틀릴리가 없는데? 하나님이 또 죽었다고 확정적으로 이야기했는데? 내가 죽었다고요? 죽은 사람이 애를 순풍순풍 낳나요? 보란듯이 살았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의 의미
계시록 3장 1절에 보면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8장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우리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장사 지내고 따라가겠습니다." 하니까 예수님 말하죠.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니까 아멘하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로 장사케 하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 전서 15장 40절에 보면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고, 썩을 것이 있고, 썩지 않을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고, 강한 것이 있고, 육의 몸이 있은 즉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런 이야기했어요. 육의 몸이 있다면 영의 몸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이 있듯이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엄마 뱃 속에 10달. 인생 100년. 그리고 영원한 삶.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져 있습니다.
엄마 뱃속의 열달은 100년 인생을 위해서 육신을 만들라고 몸을 만들라고 열달의 기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의 100년의 삶은 영원한 세계에서 살기 위한 그 영을 만들라고 육신의 삶 100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삶은 결국은 뭐냐하면 목적의 삶이 아니라는 거예요. 과정의 삶이라는 거죠. 영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삶. 마치, 엄마 뱃 속에서의 열달이 인생 100년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인 것처럼.
그리고 이 열달이 우리 인생의 근본된 목적이 아닌 것처럼. 이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 100년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리고 영원한 삶을 위해서 100년을 또 준비하면서 사는 삶. 바로 인생이 가야 될 세 단계의 노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번째 육신의 단계에서 끝난다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 거예요. 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난 놈, 날 때부터 금수저, 날 때부터 흙수저. 날 때부터 그냥 몸이 불편해서 다니는 사람, 날 때부터 몸이 좋고 머리가 좋고 신체 발달이 잘 된 사람. 너무너무 불공평한 것 같잖아요.
근데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핵심이고, 이것이 근본이기 때문에, 그 영원한 세계에 비해서 인생 7~80년 1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영원한 세계에 있기 때문에 이 결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불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3 수능 기간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고3 수능생이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공부를 막 열심히 하면, 내가 이렇게 10달 고생하면 내가 8달 10달 고생하면 내 앞으로 그냥 수십 년이 막 팔자가 달라져 하고 막 열심히 공부하죠? 근데 그렇게 공부할 때 보면은 왜 나만 공부해야 돼? 다른 애들 다 놀고 있는데? 왜 나만 공부해야 돼? 아무도 그런 소리 안 해요.
오히려 "야 나도 어제 어젯밤에 놀았어. 어제 놀았다. 너도 좀 놀아 괜찮아. 나도 공부 못했어. "해가지고
"어 그래?"' 제가 공부 안 했구나. 그럼 나도 조금 쉴까? 나는 어제 많이 했는데."
그러면 그 쉬고 있을 때 쫓아가서 자기 혼자 공부합니다. '더 놀아라. 더 놀아라.'하고 자기는 계속 공부하는 거죠. 왜 그러죠?
결국은 이 고3 수능 기간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이후에 이 엄청난 기간의 삶을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때는 고생을 사서 해도 괜찮다. 결국 여기에서 승부가 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삶이 내 인생의 승부처니까. 라고 하기 때문에 여기서 "왜 나만 공부해야 돼요? 쟤네들은 저렇게 팔자 적게 놀고 있는데 왜 나만 공부해야 돼?" 이런 소리 안 하는 거예요. 고3 기간이 목적이 아니고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로 인해서 이유의 삶이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의 세계도 마찬가지예요. 이 고3 기간이 내 인생에 전부 다 생각하면은 어떤 놈은 놀고 있고, 어떤 놈은 공부하고 있고. 진짜 불공평하네. 그렇게 할 거예요. 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야. 이건 잠시 잠깐의 하나의 과정에 불과해. 이 과정을 내가 희생해서 오히려 더 큰 내가 목적의 세계를 이룰 수 있어 하기 때문에, 이걸 갖다가 왜 쟤는 팔자 편하게 놀고 나는 왜 이렇게 공부해야 되나? 그런 소리 안 하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고3 기간이 내 인생에 전부다. 내 인생의 끝이다.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겠죠. 마찬가지로, 육의 세계만 있다고 하면 허무한 삶이고 공정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고 아니면 진짜 그냥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이렇게 막 팔자를 나눠놨나?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런데 이 육신의 세계 100년은 영원한 세계에 비하면 너무 작은 시간이라는 겁니다. 이 작은 시간에 영원한 세계가 좌우된다 생각하면, 이 시간에 내가 지금 아픈 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뭐 그냥 빨리 죽고 뭐 오래 살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목적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점수를 따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인식하면은 이 인생의 근본 목적을 이룰 뿐만 아니라, 허무하네 또는 불공평하네 부족하네 이런 소리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폴로 11호 달나라가는거 보니까 처음에 출발할 때는요. 이렇게 엄청나게 큰 게 막 불을 뿜으면서 올라가더라고요. 그런데 이만한 게 하나 떨어져 나오고. 요만한 게 하나 떨어져 나오고 마지막에는 요만한 거 하나 착륙선 하나가 달에 떨어져 있는 거예요.
달에 가는 건 요놈 하난 거예요. 요놈 하나를 날려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것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그냥 떨어져 나갔는데 이것이 없으면 또 이것이 여기 갈 수가 없어요. 이것이 있어야 이게 여기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가다 보면 다 떨어져 나가요. 다 소모품인 거예요. 떨어져 나가야 돼요.
근데, 이것이 이것이 어느 기간까지는 이거 반드시 있어야 이게 날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치 우리가 모태 지태 인생 100년 영원한 삶. 이렇게 좌우될 수 있다는 거예요. 목적의 삶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원한 삶을 대비를 해야 된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 보면 살리시는 것은 영이시니 육은 무익하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이 영이 핵심이라는 거예요.
아까 고린도 전서에 나온 것처럼. 우리의 몸은 두 가지 몸으로 존재하고 있다. 육이 있냐? 그럼 영도 있어.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살리시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그런데 육이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너무너무 중요하죠.
왜냐하면 이 육신이 있어야 내 영이 성장할 수 있고,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이야기하기를 우리의 육은 알곡의 껍데기와 같다. 그리고 그 영은 안에 있는 알맹이와 같다. 그래서 육신의 죽음은 타작마당과 같다. 육신이 죽으면 인생의 타작마당과 같다. 타작마당에 가면 어떻게 하냐? 껍데기는 까서 불에 던진다는 거에요.
우리의 육신은 어떻게 돼요. 죽고 나면 인생의 죽음은 타작마당과 같아서 불에 태워서 없어진다는 거예요. 화장을 하든 땅에 매장을 하든 하여튼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알맹이를 끄집어내서 이 알맹이가 실한 알곡이면 하늘 창고에, 근데 어 알곡이 되지 않은 거예요. 그러면 허무한 거죠. 내가 8개월 동안 죽으라고 농사했더니만 이거 얻었어? 하고 허무하다고 그냥 팽개치게 되는 거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었다는 것은 영이 죽었다는 것이죠. 아까 아담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죽었다. 육은 살아있는 거예요. 선악과 따먹으면 넌 죽었다 하는 것은 계시록 3장 1절에 너가 살았다하나 너는 실상은 죽은 자다 하는것과 같습니다.
"살았으면 살았지 뭐? 죽으면 또 살았다? 죽었다? 뭐 하는 거야 도대체?"
하나님 보실 때는 영을 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영이 죽었다는 겁니다. 육신은 살아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 사는 거예요.
죽었다는데 왜 안 죽었지? 영이 죽었다는 거죠. 성경은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영적인 죽음이란?
그래서, 그러면 영이 죽었다는 거. 어떤 게 영이 죽은 거냐? 하나님과 내 영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죽음이에요. 내 육신의 죽음은 내 육과 영이 끊어진 것이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었다. 이 말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너는 육신은 살아 있지만 영이 죽었어. 그러니까 너는 죽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아까 말한 마태복음 8장 22절에 보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사 지내고 갈게요."
"그래? 그러면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케 하라. "
이건 뭐냐면, 육신이 죽은 너희 아버지, 육신이 죽은 자는 영이 죽은 동네 사람들, 친지들, 영이 죽은 사람들 즉 예수님과 연결되지 않은 하나님께 연결되지 않아서 영이 죽은 그들로, 육이 죽은 너 아버지를 장사케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죠?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다 하는 것은 바로 영이 죽었다. 그 영이 죽었다는 것은 바로 관계성의 단절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성경 2천번이상 읽으신 정명석목사님께 배운 말씀입니다. 성경은 전설이나 신화도 아닌 하나님의 유일한 진리말씀인데 모르니 억지로 성경을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보편타당한 진리이며 성경의 문제는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이채널을 통해 성경의 가치를 더 깨닫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지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와 이 시대에 우리 신앙인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올려봅니다. [CGM 공식 사이트] 연결 http://www.cgm.or.kr CGM 소통 공간 [만남과 대화]연결 http://www.god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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